사회 사회일반

[로터리] 신약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한국

■오동욱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

오동욱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오동욱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




가족이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진단 받거나 암으로 더 이상 써볼 약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환자들은 애가 탄다. 다른 치료 방법이 있을지 백방으로 찾아나서고 종종 외국에서 신약이 개발됐는데 아직 국내에서 허가를 받지 못했다거나 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약값이 비싸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의 사연을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글로벌 제약사 관계자들도 고민이 많다.



새로운 약물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시장에 출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난중지난(難中之難)’이다. 질병과 약의 작용기전에 대해 이해하고 수천 번 혹은 수만 번의 후보 물질 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야만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뛰어난 약을 출시할 수 있다. 한 개의 신약을 제공하려면 수십 년의 시간과 막대한 자본, 전문인력이 장기간 투입되는 과정이 필수라는 의미다. 혁신적인 신약들이 대부분 글로벌 제약사를 중심으로 개발돼온 건 그런 배경과 관련이 깊다. 몇 년 전부터는 국내 제약사들도 글로벌 제약사들과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신약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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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글로벌 신약 개발 트렌드는 희귀 항암제 및 희귀·난치성 질환 영역이다. 면역 체계를 정상화시키거나 유전형질을 변화시키는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향후 50년 내에 암이 정복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신약 개발 분야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개발된 신약은 주로 글로벌 제약사들이 허가를 받는다. 어떤 시장에 먼저 출시할지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도 글로벌 제약사의 몫이다. 그렇다면 제약사 입장에서 한국은 신약을 먼저 출시하고 싶은 나라일까. 다행히 한국은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신약을 빠르게 출시하는 국가에 속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은 선진국 혹은 경제 규모가 비슷한 국가에 비해 신약의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우선 신약이 건강보험 급여에 등재될 때도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된 효능과 효과보다 좁은 범위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프랑스·독일·일본 등은 상대적으로 약의 허가 사항 범위를 유연하게 적용한다. 같은 약이라도 국내 환자들보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넓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은 신약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한국에 신약을 출시할 때 글로벌 최저가 수준의 약가를 수용해야만 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국내 환자들은 신약이 개발돼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허가는 받았지만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못해 고가의 신약 비용을 전부 환자가 부담해야 할 때도 있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운용하는 정부 입장에서 희귀 질환 및 희귀암 환자들이 신약을 빠르게 접하고 더 넓은 보장 범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다만 정부도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렵게 신약이 개발됐는데도 정작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비급여 현실에 따른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없도록 하루빨리 개선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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