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섀도복싱

신해욱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빈틈을 노려 내가 커다란 레프트 훅을 날릴 때조차 당신은 유유히 들리지 않는 휘파람을 불며 나의 옆구리를 치고 빠진다.



크게 한 번 나는 휘청이고

저 헬멧의 틈으로 보이는 깊고 어두운 세계와 우우우, 울리는 낮게 매복한 소리.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완악한 힘에 맞서 당신을 안아버리는 이 짧고 눈부신 한낮.

부러진 내 갈비뼈 사이의 텅 빈 간격으로 잠입하는 당신에 대해



당신의 그 느린 일렁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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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다.

천천히 저녁이 열리면

이 헐거움을 놓치지 않으며 길고 가늘게 드러나는 당신.

빈틈을 노려 내가 복부를 공격할 때조차 당신은 정확히 내 팔 길이만큼만 물러서며 나를 조롱한다. 당신이

거기 없다는 걸 안다.





섀도복싱은 허공을 상대하는 일이다. 어떤 챔피언도 섀도복싱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링 위에서 강력한 상대를 쓰러트릴지언정 허공을 무릎 꿇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링 위의 시간은 짧고 링 밖의 시간은 길다. 링 위에서 이기려면 무한히 긴 섀도복싱을 연습해야 한다. 링에서 이겨도 링 밖에서 지면 그 선수는 패배한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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