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얼굴 절반 뒤덮은 화상에 마음 닫았던 8살 소년 “한국서 세계여행 꿈 얻어”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알리누르, 사고로 안면화상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2년 넘게 방치…은둔생활

서울아산병원 해외의료봉사단 통해 치료기회 얻어

알리누르(왼쪽)와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성공적인 치료를 기념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알리누르(왼쪽)와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성공적인 치료를 기념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얼굴 절반을 뒤덮은 화상 흉터는 8살 소년을 좁은 방안에 가뒀다. 화상 부위가 햇볕에 닿으면 참을 수 없이 가려웠고,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만 같아 심리적으로도 위축이 됐다. 자연스레 바깥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었고, 친구들과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외부 세상과 벽을 쌓고 지냈던 키르기스스탄의 한 소년은 한국 의료진의 도움으로 해맑은 미소를 되찾고 세계여행의 꿈을 얻었다.

서울아산병원은 안면화상으로 인해 코 모양이 변형되는 등 영구적인 기형을 갖고 있던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알리누르(Alinur)가 두 차례에 걸친 화상 흉터 제거와 피부재건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고 19일 밝혔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나라다. 토지의 약 80%가 고산지대로 이뤄져 있을 정도로 지형이 복잡해 교통이 불편한 데다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주민들이 적절한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여섯 살 때였다.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지역 시골 마을에 살던 알리누르는 아궁이 근처에서 뛰어놀다 가족들이 집 보수를 위해 끓이던 화학용 액체가 코, 이마, 눈 등 얼굴 전체를 덮치는 사고를 당했다. 얼굴 중안부에 3도 화상을 입으면서 얼굴 전체가 부어올라 첫 사흘 동안은 눈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알리누르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에서 급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은 집에서 40km가량 떨어진 곳.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은 끝에 다행히 시력에 이상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화상 후유증으로 코 모양이 변형되고 얼굴 절반 이상을 뒤덮는 화상 흉터가 생겼다. 또한 화상 부위에 햇빛이 닿으면 심한 자극과 가려움 등이 발생해 바깥으로 나가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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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누르의 가족은 월수입의 3분의1에 해당하는 큰 비용을 부담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현지 병원에서는 흉터가 더 커지지 않게 조치하는 게 최선이었다. 현지 의료진들은 전신 마취를 하고 여러 차례 대수술을 해야 하는데, 만 14세가 넘어야 시도해 볼만 하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알리누르(왼쪽 여섯 번째)와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왼쪽 일곱 번째)를 비롯해 관련 의료진들이 성공적인 치료를 기념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알리누르(왼쪽 여섯 번째)와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왼쪽 일곱 번째)를 비롯해 관련 의료진들이 성공적인 치료를 기념하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6살의 어린 나이에 친구들조차 만나지 못한 채 은둔생활을 시작한 알리누르에게는 혼자 세계지도를 보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그렇게 2년 가량을 버티던 알리누르는 지난 7월 키르기스스탄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온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눈에 띄었다. 당시 키르기스스탄에서 알리누르를 진료한 서현석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화상 부위가 얼굴인 만큼 아이의 기능적, 외형적, 심리적 부분까지 고려해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한 번의 수술로 끝나지 않는 고난도 수술인 만큼 한국으로 이송해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생 아이가 얼굴의 흉터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데 절망했던 알리누르의 가족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한국행을 택했다.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팀은 지난달 9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알리누르에게 정밀검사를 시행한 끝에 이마 피판(이식을 위해 분리한 피부나 조직)을 떼내어 코를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알리누르는 4시간에 걸쳐 화상 흉터를 제거하고 이마 피부를 떼어 코를 다시 만드는 1차 수술을 받았다. 첫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3주간의 생착기간을 거쳐 이식한 피판과 이마의 연결 부위를 분리하는 2차 수술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나서야 화상을 입은 피부에서도 정상적이고 독립적으로 혈액이 흐를 수 있게 됐다는 소견을 들었다. 8살의 나이에 큰 수술을 무사히 이겨낸 알리누르는 20일 귀국을 앞두고 있다.

알리누르는 웃는 얼굴로 “화상을 입은 후로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게 싫었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다”며 “어른이 되면 세계지도에서 봤던 나라들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건 부위가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며 “알리누르가 화상의 아픔은 잊고 건강하게 멋진 성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알리누르의 치료 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한다. 최 교수팀은 지난해 11월에도 경제적 어려움과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10여 년간 15cm가 넘는 입 속 종양을 방치했던 마다가스카르의 플란지(Flangie·22)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성공적으로 치료한 바 있다. 서울아산병원 해외의료봉사단이 의료환경이 열악한 14개 국가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한 횟수는 누적 53회에 달한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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