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장비업계 34년 외길…보따리장사 어머니가 키운 '반도체맨' [CEO&스토리]

이상원 램리서치코리아 대표

글로벌 반도체 장비社 대표 등 두루 역임

"고객사와 가까워야 빠른 결과 만들어내"

현지화 경영 원칙에 따라 국내투자 확대

韓 소부장 업체 활용한 부품 조달 활발

"글로벌 회사지만 한국 반도체 시장 기여"

작년엔 최첨단 R&D 시설 'KTC' 문열어

직원들과 '오픈톡'으로 내부소통도 원활

이상원 램리서치코리아 대표가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이상원 램리서치코리아 대표가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우리는 글로벌 회사지만 국내 회사로 고객사들에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투자도 많이 하고 고용도 늘려가면 분명히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원 램리서치코리아 대표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세계 3대 반도체 장비 회사로 통하는 미국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에서 모두 근무하며 한국지사 대표를 지낸 이력 때문이다. 국내 기업에 비유하면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모두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을 이끈 셈이다.

성공 가도를 달린 이력만 보면 냉철한 최고경영자(CEO)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를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의 평가는 다르다. 잠시만 대화를 나눠보면 비록 몸은 미국 기업에서 근무할지언정 내면에는 대한민국 반도체 생태계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순수한 욕심이 있다는 것을 금세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직접 내세우는 경영 목표에서도 이 같은 진정성이 묻어난다. 11일 경기도 성남시 램리서치코리아 판교 본사에서 만난 그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녹아드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 장비 제조 및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 국내 주요 고객사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현지화 전략’을 대표 경영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을 활용한 부품 조달도 국내에 진출한 해외 기업 중 가장 활발하다는 것이 램리서치코리아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의 제조·R&D 투자를 늘리면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큰 도움을 줄 것이고 궁극적으로 고객사에 대한 이익이 될 것”이라며 “우리의 사업은 결국 고객사들이 잘돼야 가능하다. 투자를 늘려 현지화에 성공한다면 장기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갖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34년간 업력을 쌓으며 잔뼈가 굵은 반도체 전문가다. 글로벌 3대 장비사인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에서 마케팅, 사업 개발 등을 오래 경험했고 두 회사의 한국법인 수장까지 지냈다. 이 대표는 이른바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행상까지 다니며 자식들을 키워냈다고 회고한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1989년 지인의 소개로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에 입사하면서 반도체 업계와 연을 맺었다. 1995년 미국 본사로 옮겨 근무하게 되면서 현지에서 세일즈 마케팅 등의 업무를 맡아 반도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 대표는 “모든 전자기기에 반도체가 들어가고 스마트시티에서도 반도체가 없어서는 안 된다”며 “제가 34년 동안 반도체 업계에 있었지만 앞으로도 50년 넘게 쭉 이어갈 수 있는 산업군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후 2000년 램리서치코리아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68명 규모였던 회사는 2014년 이 대표가 회사를 떠날 무렵 485명으로 8배 가까이 성장했다.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코리아 대표를 지낸 뒤 2021년 램리서치코리아로 돌아왔고 지난해부터는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와 램리서치코리아테크놀로지 대표까지 겸하고 있다.



그는 “2000년께 300㎜ 웨이퍼가 처음 도입됐는데 고객사들과 양산에 쓸 수 있는 장비를 구축하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며 “고객사들과 램리서치 본사, 국내 팀원들과 협업 및 조율을 하면서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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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리서치는 현지화 전략에 따라 국내에서 투자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반도체 장비·공정 기술 개발을 위한 최첨단 R&D 시설인 ‘램리서치코리아테크놀로지센터(KTC)’를 개관했다. 이 대표는 “한국의 반도체 R&D 시설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자랑했다.

삼성전자 300조 원, SK하이닉스 120조 원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국내에 초대형 투자 계획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추가 투자를 더욱 확대할 방침도 밝혔다. 그는 “2024년까지 구상한 내부 공간에 시스템을 채우고 그 뒤에 추가로 공간을 더 늘리도록 투자할 계획”이라며 “지금 KTC 부지뿐 아니라 그 위에도 상당한 땅을 매입해 확보해놓았다. 고객사들의 국내 투자 규모에 따라 우리의 시설을 더 확보해야 한다면 언제든 건물을 올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래의 투자를 대비해 부지를 마련해놓은 것이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답했다.

램리서치가 국내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은 ‘현지화 전략’ 때문이다. 고객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연구 시설을 갖추고 협력 체계를 강화해 솔루션 제공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대표는 “현지화 전략은 한국뿐 아니라 대만 등 여러 나라에서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다”며 “국내 메모리 제조 회사 두 곳의 점유율을 보면 D램이 75%, 낸드는 50%에 달한다. 메모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램리서치로서는 한국에 투자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사들이 본사에 웨이퍼 10장을 보내 테스트하는 것과 이곳에서 200장을 테스트하는 것은 게임이 안 되는 수준”이라며 “고객사와 가깝게 일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램리서치는 국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에도 생산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리와 물류 측면에서 이점을 가질 뿐 아니라 영어에 능숙해 글로벌 공급망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이 대표는 아시아 생산기지 중 한국의 장점도 상당히 크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생산하는 제품군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며 “제품 퀄리티나 인력 측면에서 우수하고 국내 고객사들에 더 빠르게 전달해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고 부연했다.

이 대표의 현지화 전략은 구성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는 “대표로 취임한 후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일해본 적이 없다”며 “직원들이 오랫동안 일하고 램리서치에 다닌다는 데 대한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도록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전하기 위해 취임 후 지금까지 100회가 넘는 ‘오픈톡’ 행사를 진행했다. 직원들에게는 ‘대표님’이라는 딱딱한 호칭 대신 이름의 이니셜 약어인 ‘SW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고 있다. 10명 안팎의 소수 직원들을 대상으로 1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면서 건의 사항을 듣고 소통하고 있다. 사소한 건의까지 꼼꼼히 기록하고 추후 진행 경과를 개별적으로 알리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오픈톡을 언제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인기다. 이 대표는 “그게 결국 회사가 좋아지는 길”이라며 “굉장히 좋은 소통 문화의 하나로 정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임직원뿐 아니라 임직원 가족들까지 초청해 전사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전체 직원이 1800명가량이니 규모만도 수천 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직원들보다 가족들이 더 좋아하는 행사”라며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떤 직원이 회사를 옮기려 할 때 가족들이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려 하느냐’며 말리게 된다. 조직이 화합하는 데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He is…

△1961년 서울 △순천향대학교 화학 학사 △1989년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마케팅 한국 담당 △1997년 램리서치코리아 사업개발부 한국 담당 △2014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 반도체 사업부 총괄 사장 △2017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 대표이사 △2021년 램리서치코리아 대표이사 △2022년 램리서치 한국법인 총괄 대표이사


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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