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최강 한파에 '꽁꽁' 언 한반도 …추위 속 무료급식소·한파쉼터 가보니

수도권 한파주의보…전국 강추위 덮쳐

한파에 평소보다 무료급식소 방문 감소

배달 라이더들은 한파 쉼터서 추위 녹여

한랭질환자 속출, 21일까지 누적 237명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근로자 보호해야"

극강 한파가 찾아온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 마련된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휴식하고 있다. 이날 북극에서 유입된 찬 공기의 영향으로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21.7도까지 떨어졌다. 정유민 기자극강 한파가 찾아온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 마련된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배달 라이더들이 휴식하고 있다. 이날 북극에서 유입된 찬 공기의 영향으로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21.7도까지 떨어졌다. 정유민 기자





“이렇게 춥다고 해서 회사에서 더 신경을 써주거나 하는 건 없어요.”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에 위치한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에서 14년차 콜 기사 정광선(67) 씨가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늘 같이 추운 날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곳은 여기 뿐”이라면서 “배달 가기 전 잠깐 들러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면 그나마 낫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에 올해 첫 ‘동파경계’가 발령되는 등 아침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진 23일 이동노동자 쉼터에는 10여 명의 배달 근로자들이 핫팩을 주무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요구르트 배달원 50대 김 모 씨도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는데 너무 추워서 빨리 배달 마치고 들어가려고 한다”며 다시 추운 야외로 걸음을 옮겼다.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 1층에 마련된 4~5평 남짓한 작은 쉼터에는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물과 마실거리, 핫팩 등이 마련돼 있고 안마의자와 헬멧 건조에 쓰이는 기기도 비치돼 있었다. 쉼터 이용자 40대 남 모 씨는 “10월 초에 처음 이용하기 시작한 뒤로 하루 한 번은 꼭 방문한다”며 “한파를 고려해 핫팩도 상시 구비하고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야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이 한파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겨울철 한랭질환 예방이 필수적이다. 이에 야외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조정하거나 한파 쉼터 같은 공간 확보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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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명예교수는 “야외에서 배달을 하거나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등 장시간 추위에 노출돼 있으면 동상·저체온증 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행정적 가이드라인을 통해 혹한기 근로자들에게 휴게시간 추가 부여, 보온 공간 마련 등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가 23일 밝힌 ‘한랭질환 발생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랭질환 재해자는 총 43명이다. 이들 중 72.1%인 31명은 1월에 피해를 입었으며 주로 야외에서 일하는 직군에서 발생 빈도가 높았다.

서울의 체감온도가 영하 21.7도까지 떨어진 23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권욱 기자서울의 체감온도가 영하 21.7도까지 떨어진 23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노인들이 무료급식소에서 점심 배식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권욱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도 강추위 속에 식사를 하러 온 노인들로 장사진을 이뤄 금세 탑골공원 담장에서부터 공원 내부까지 이어지는 긴 줄이 생겼다. 광진구에서 온 한 노인(81)은 “일찍 오면 한 20분이면 들어가는데 오늘 조금 늦게 나서서 1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경기 곳곳에서 모여든 노인들은 날이 좋으면 탑골공원 인근에서 장기를 두는 등 시간을 보내다 귀가하지만 최근 몰아친 한파로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탑골공원 인근 종로 2가 우체국에서 추위를 피하다가 도시락 나눔 시간에 맞춰 건물을 나선 김 모(89) 씨는 “화장실도 쓰고 추우니 우체국에 들렀다가 나가는 길”이라며 “날이 너무 추워 도시락을 챙겨 바로 집으로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평소에는 수백 명의 노인들로 북적이는 탑골공원이지만 최근 한파로 다소 적적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인근 무료 급식소 관계자는 “평소 280인분 정도 준비를 하는데 노인들이 적든 많든 똑같이 준비한다”면서도 “한파가 오고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조금 덜 오는 편이라 어제도 30~40명은 덜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질병관리청 한랭질환 응급실 감시 체계 현황에 따르면 한반도를 강타한 한파로 전국에서 이달 21일까지 집계된 한랭질환 환자는 237명에 달하고 있다. 이 중 추정 사망자 수는 7명이다. 항공편 결항도 이어졌다. 23일 오전 11시 기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제주 76편, 김포 24편, 대구 8편 등 총 122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

대설로 인해 제주 5개 등 지방도 10개가 통제됐으며 여객선도 71개 항로, 93척이 출항하지 못했다. 이날 서울과 인천 등 전국적으로 58건의 수도계량기 동파 사고가 발생해 복구가 완료됐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밑도는 강추위는 이번 주 평일 내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24일까지 한파가 이어지고 26일까지 평년 기온을 밑도는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령 기자·정유민 기자·채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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