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한국 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 연장전이 열린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이든턴CC(파71) 18번 홀(파4).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7·하나금융그룹)가 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훌쩍 넘겼다. 갤러리 스탠드에 걸려 멈춘 볼 바로 옆으로 장미 꽃다발과 아이스 버킷에 담긴 샴페인이 나란히 보였다. 리디아 고의 LPGA 명예의 전당 입회를 축하하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지난주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 포인트 26점을 만든 리디아 고는 입회에 1점만을 남겼고 이 대회 우승도 유력해 역사적인 순간이 연출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우승 경쟁자 넬리 코르다(26·미국)는 정규 라운드 두 홀을 남기고 리디아 고에게 3타나 뒤졌다. 하지만 코르다의 뒷심에 격차는 거짓말처럼 좁혀져 11언더파 273타의 동타로 끝났고 리디아 고는 부담스러운 연장에 끌려갔다.
1차 연장은 둘 모두 파. 리디아 고는 그린 뒤 칩샷을 잘 붙여 기회를 살렸다. 볼이 꽃다발과 샴페인을 찾아간 게 어쩌면 우승 신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다시 18번 홀에서 진행된 2차 연장에서 코르다는 1차 연장 때의 리디아 고처럼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넘겼지만 칩샷을 잘 붙였다. 리디아 고는 2온 뒤 10m 버디 퍼트가 짧았다. 2m 조금 넘는 내리막 파 퍼트는 홀 가장자리를 훑고 나왔다. 3퍼트 보기. 코르다는 2m가 조금 안 되는 파 퍼트를 넣고 긴 승부를 마무리했다. 우승 상금은 26만 2500 달러(약 3억 5000만 원).
전 세계 랭킹 1위(현재 4위)인 코르다는 이날 승리로 14개월의 우승 가뭄을 씻었다. 2021년 한 해만 투어 4승을 올리고 도쿄 올림픽 금메달까지 더해 꽃길을 달리던 그는 2022년 혈전증과 지난해 허리 부상에 내리막을 걸었다. 이번 대회 4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4라운드에 나서고도 16번 홀까지 보기 3개와 더블 보기 1개로 5타를 잃어 무너지나 했는데 기어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투어 통산 9승째로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다.
고향 브레이든턴에서의 우승이라 더 의미가 큰 코르다는 “사실 17번 홀 들어갈 때 이미 게임은 (리디아 고의 우승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홈 팬들 앞에서 이렇게 극적인 우승이라니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연장에 앞선 승부처는 17번 홀(파5)이었다. 코르다, 메건 캉(미국)과 공동 선두였던 리디아 고는 이 홀 두 번째 샷 때 3번 하이브리드 클럽을 들었다. 낮게 깎아친 샷이 급격한 페이드(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는 구질)를 그리며 그린을 찾아갔다. 그린 앞 오른쪽에 물이 있었지만 볼은 절묘하게 물을 피하고 경사를 타고 올라가 핀에 딱 붙었다. 탭인 이글로 순식간에 2타 차 선두. 코르다의 16번 홀(파4) 보기에 격차는 3타까지 벌어졌다.
리디아 고가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승자가 바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실제로 리디아 고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다만 코르다가 두 홀을 남기고 제대로 ‘각성’했다. 17번 홀에서 중거리 이글 퍼트를 넣고 18번 홀에서는 샷 이글이 될 뻔한 탭인 버디를 잡았다.
개막 2연승과 통산 21승을 바라봤던 리디아 고는 최연소 명예의 전당 입성을 다음으로 미뤘다. LPGA 투어는 휴식기 뒤 2월 22일 혼다 타일랜드 대회로 재개된다. 리디아 고는 2월 29일 싱가포르에서 개막하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부터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2타를 줄인 리디아 고는 “오늘 몇 번의 3퍼트로 대가를 치렀다”며 “후회를 하자면 끝이 없는 법이다. 이번 주도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2주 간 1·2위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 군단은 16명이나 출전했는데도 톱10 입상자를 내지 못했다. 3언더파 김세영의 공동 13위가 최고 순위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건너간 신인 이소미와 성유진은 각각 2언더파 공동 16위, 2오버파 공동 35위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