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되는가 했던 삼성전자 ‘성과금 0원 사태’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경기 한파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한 푼도 주지 않자 불만이 일었는데, 진화에 나선 반도체 부문 수장 경계현 사장의 말이 되레 논란을 키운 것이다. 직원들은 회사가 제시한 위기 극복 방안이 못미덥고 성과급 미지급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밀린 2등 기업임을 자인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경 사장은 삼성전자 4분기 실적 발표가 있었던 지난달 31일 직원 간담회 ‘위톡’을 진행했다. 간담회는 최근 회사에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직원들의 높아진 불만을 진화하고자 진행됐다. 삼성전자는 인센티브의 일환으로 매년 한 차례 사업부별로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급하는데 지난해 반도체 업황 악화로 OPI가 연봉의 0%로 결정된 것이다. 경 사장은 이외에도 향후 회사 경영 방침 및 경쟁력 회복 방향 등에 대해서도 직원들 질문에 답했다.
소통 노력에도 간담회 직후 직원들 불만은 되레 높아졌다. 경 사장이 OPI가 이같은 규모로 정해진 데 대한 이유를 설명한 것이 더 큰 논란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부문 직원들은 자사의 대우와 경쟁사 SK하이닉스의 성과급을 대비하며 회사의 박한 결정을 비판해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2월 말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큰 폭의 기업가치 상승을 이끌었다”며 직원들에게 자사주 15주와 격려금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경 사장은 이를 의식한 듯 ‘총보상우위는 우리 회사가 점유율이 앞설 때 가능하다’는 취지로 성과급 규모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회사 일각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사실상 회사가 SK하이닉스에 밀린 2위 기업임을 자인한 것이라며 허탈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매출 규모 기준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 부문에서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이지만 최근 주목 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부문에서는 희비가 엇갈린다. HBM은 데이터가 다니는 통로를 넓혀, 한번에 많은 연산을 동시다발로 수행해야 하는 인공지능(AI) 컴퓨팅에 용이하다. 최근 AI 붐과 함께 주목 받고 있는 고부가 제품으로 SK하이닉스가 이 부문에서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날 나온 사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향후 경영 전략에 관해 질문에 대해 경 사장은 ‘점유율 회복을 위해 경력직 채용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일부 직원은 이같은 보상 수준으로 우수 인재를 빼올 수 있겠냐고 반문했는데 경 사장은 ‘쉽지 않은 문제고 임직원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 사장은 한 때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까지 고려했지만 최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말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S부문에 취임한 경 사장은 주기적으로 사내 소통을 강조해와 대외적으로 그간 ‘소통왕’ 이미지를 쌓아온 인물이다. 이번에도 직원 불만에 간담회를 내세워 정면돌파를 시도했지만 되레 직원 불만이 높아졌다.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회사가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는 좋지만 충분히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서도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고 아예 질문의 핵심을 피해간 부분도 많아 아쉬움이 남는 자리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