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 당국은 중국의 초음속 고고도 무인정찰기(드론)가 한국 영공을 침범해 평택·군산 등 주한미군 기지를 정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태평양에 있는 미군기지까지 엿볼 수 있는 수준의 드론을 개발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실전 배치한 최신예 초음속 스텔스 무인기(드론) 일명, ‘우전(無偵·WZ)-8’에서 비롯한다. 중국군이 보유한 드론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비밀 병기’로 통한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5월 18일(현지 시간) 기밀 유출로 파문을 일으킨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게재된 미 국가지리정보국(NGIA)의 기밀문서를 입수했다며 이같이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방위군 소속 공군 일병 잭 테세이라가 온라인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 채팅방에 유출한 미국 정보기관들의 정보 가운데 WZ-8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 문건에 담긴 WZ-8의 위성사진과 함께 한국과 대만을 정찰하고 복귀하는 예상 비행경로 등이 공개됐다.
“WZ-8, 태평양 美 군사기지 정찰 가능”
기밀문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폭격기가 동해안 바로 앞까지 날아가 무인정찰기를 방출하고, 서부 전역을 훑는다. 이 지역에는 평택·군산·오산기지 등 주한미군 일부 기지가 위치하고 있다. 대만 역시 중국의 스텔스 드론이 군사기지를 촬영하는 등의 정찰 활동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안후이성 루안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전략 폭격기 훙(轟·H)-6M이 자국 동해안까지 날아가 탑재된 WZ-8을 발사하면 WZ-8은 대만이나 한국 영공에 진입해 고도 30.5㎞에서 음속의 3배 속도로 비행해 정찰 활동을 한다는 방식이다.
루안 공군기지는 중국 상하이에서 내륙으로 560㎞ 떨어져 있다. 중국군 동부전구 공군이 관할한다. NGA가 갖고 있는 2022년 8월 9일자 위성사진을 보면 WZ-8 2대가 루안 공군기지 활주로에 배치돼 있다. 대만 국책 방산연구소 국가중산과학연구원의 항공 시스템 연구 책임자 치리핑은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WZ-8의) 주요 용도는 태평양에 있는 미국의 군사기지 정찰일 것”이라고 전했다.
WZ-8은 2019년 중국 건국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후 2021년 9월 광둥성 주하이에서 열린 주하이 에어쇼에도 등장한다. WZ-8은 중국의 드론 기술을 집약한 첨단 모델이다. 공개된 성능을 유추하면 태평양 지역에서 미군 군사요충지인 괌까지 정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높은 고도에서 초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도록 로켓 추진 방식을 채택했다. 지구 상공 40㎞에서 마하 4.5 속도로 비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토대로 중국군의 주력 둥펑(東風·DF)-17 미사일뿐 아니라 대함탄도미사일 DF-26D를 비롯한 다양한 미사일을 유도할 수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항공모함 같은 이동 표적 공격에 대한 필수적인 표적 정보를 실시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DF-17은 극초음속 활공 비행체(HGV)를 탑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사일로, 미 해군 항공모함을 포함한 한국과 일본의 핵심 군사자산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WZ-8은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 산하 청두항공기설계연구소가 개발했다. 길이 11.5m, 날개 길이 6.7m, 높이 2.2m에 이른다. 동체에 전자광학 센서 등 각종 정찰 장비를 적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더 반사 면적을 줄이기 위해 매끈한 외형을 하고 있고 복합소재를 사용해 스텔스 기능이 특징이다.
무인기 ‘SR-72’ 블랙버드 빼고 가장 빨라
이 드론은 고속으로 상승한 다음 탄도미사일과 비슷하게 고도와 속도를 이용해 활강하면서 회수 지점으로 비행한다. 이 드론은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무인정찰기 SR-72 블랙버드(마하 6)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성능 분석을 기반으로 미국에서는 중국이 이 무인정찰기를 곧 실전에 쓸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지리정보국은 관련 문서에서 중국이 공군 기지에 ‘거의 확실하게’ 첫 무인항공기 부대를 설립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포토맥 정책연구소의 딘청 선임 연구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나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인도, 동남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걱정해야 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심각한 문제는 명백한 영공 침범이지만 현재로선 한·미 양국군 모두 요격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사실이다. 고공을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데다 레이더에 거의 잡히지 않는 스텔스 무인기라서 지대공을 비롯해 전투기에서 발사되는 공대공 미사일로도 격추가 불가능하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군 소식통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배치해놓은 미국제 패트리엇 미사일로도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대만 국책 방산연구소인 국가중산과학연구원의 항공 시스템 연구 책임자 치리핑도 “(이 드론은) 탐지와 요격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최근 중국군은 드론을 이용해 대만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 지역, 남·동중국해 등에서 정찰 활동을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만을 한 바퀴 도는 순회 정찰비행은 일상화하고 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군이 대만 정찰비행에 투입하는 드론은 ‘BZK-005’와 ‘TB-001’ 등이다. BZK-005는 최대 1250㎏ 장비를 싣고 8000m 상공에서 시속 150~180㎞로 비행하면서 40시간 동안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게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공격용 드론 대거 실전 배치
중국군은 고고도 장거리 드론 WZ-7을 투입해 일본 열도 인근까지 정찰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WZ-7은 일본 오키나와 본섬과 미야코섬 사이 상공을 비행하는 등 동중국해 일대에서 정찰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판 글로벌 호크’로 불리는 WZ-7의 비행고도는 2만m에 달해 지대공미사일로 요격이 어렵다.
길이 14.33m, 날개 너비 24.86m, 높이 5.41m로 미국의 고고도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보다 작지만 순항속도가 시속 750㎞, 작전 반경이 2400㎞에 달한다. 비행 가능 시간은 10시간 정도다. WZ-7은 정보 수집과 전파 교란 기능까지 갖췄다. 적의 레이더 혹은 전파시스템이 발견되면 전파 교란 기능을 작동시켜 적의 정보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와 관련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방위성을 인용해 “최근 들어 중국군 드론이 동중국해 상공에서 거의 매일 확인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긴급 발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군은 공격형 드론도 대거 개발해 실전 배치한 것으로 미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중국군이 보유한 공격용 드론 가운데 최신예 기종은 초음속 고고도 스텔스 드론인 ‘공지(攻击·GJ)-11’이다. ‘리젠’(利劍·날카로운 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GJ-11은 날개가 14m나 되고 2t에 달하는 무기를 탑재하는 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