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 규모와 전체 해외 주식 투자에서 미국 비중이 공히 역대 최고를 기록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이후 국내 증시를 떠나는 움직임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들어 19일까지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증시 보관액은 702억 7103만 달러(약 93조 9102억 원)로 집계됐다.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11년 이후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다. 올해 첫 거래일과 비교해도 6.3%나 늘었다. 보관액은 국내 투자자가 증권사를 통해 거래한 해외 주식을 예탁결제원이 보관하고 있는 규모로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증시에 투자한 금액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개인투자자들은 해외 주요 시장 중에서도 미국에 집중 투자했다. 이달 기준 전체 해외 주식 투자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9.2%로 90%에 육박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47.4%에 그쳤지만 5년 남짓 만에 비중이 두 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미국을 제외한 시장의 투자 비중은 급감했다. 2018년 중국과 홍콩의 투자 비중은 각각 13.6%, 11.6%로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했지만 이달 들어서는 1.2%, 2.0%로 합산 비중이 4%도 못 미쳤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 흐름을 보였다. 같은 기간 개인투자자의 일본 주식 투자 비중은 16.3%에서 4.9%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 일본을 대표하는 주가지수인 닛케이지수가 34년 만에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이달 들어 개인투자자의 1월 대비 보관액은 4336만 달러(약 580억 원) 줄었다.
특히 개인은 국내 시장에서 주식을 대거 팔고 있다. 실제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을 예고한 지난달 24일부터 전 거래일까지 개미는 코스피시장에서 8조 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각각 7조 9564억 원, 8457억 원을 사들인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정부가 증시 부양 의지를 드러내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개미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밸류업 발표일이 다가오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의 주가가 과열 양상을 보이자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의 장기적인 상승을 기대하기보다 단기 급등 후 조정될 가능성을 높게 본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짚었다. 다른 관계자는 “미국이 더 안전하고 투자할 종목도 많다는 현실적 판단을 투자자들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월 총선 이후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이 힘을 잃을 수 있는 점 역시 변수로 꼽힌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 정책의 목표는 훌륭하지만 세법 등 법 개정이 필요하고 기업을 독려하기 위한 수단이 궁색하다는 한계도 있다”며 “정책 발표 이전까지는 기대 심리가 증시를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4월 총선 이후 정책의 동력이 소진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국의 대형 기술주가 시장 기대를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이어가고 있는 점도 개미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게 만들고 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식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의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에도 불구하고 빅테크 기업 주도로 상승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