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양광 산업이 친환경 산업을 확대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미국 모듈 부문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태양전지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상위 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안도할 수만은 없는 선전이다.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태양광 생태계를 장악한 중국이 언제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태양광 업체들은 저가 중국산의 공습에도 태양광 설비 생산능력을 더욱 키우겠다는 대범한 투자 계획을 선보였다. ‘중국을 제외한 친환경 산업 확대’를 핵심으로 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이 같은 결정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업계에서는 ‘포스트 IRA’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시장에서 한국 태양광의 존재감이 중국에 언제든 가려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높아지는 것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솔루션에서 태양광 사업을 맡는 큐셀은 주택용과 상업용, 유틸리티(대규모 발전) 3개 부문으로 나뉜 미국 태양광 모듈 부문에서 주택용은 점유율 30%, 상업용은 17%(2023년 9월 기준)를 차지해 1위다. 주택용 모듈은 IRA 시행(2022년 8월) 전인 2018년부터 5년 이상, 상업용은 2019년 이후 4년 넘게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점유율 1위를 IRA 수혜라고만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모듈이 대량으로 필요한 유틸리티 부문은 가격이 저렴한 중국 모듈 기업들이 높은 비율로 점유하고 있다. 큐셀 관계자는 “주택용과 상업용 모듈 상위 5개 회사도 큐셀을 제외하면 전부 중국 제조사”라고 말했다.
큐셀의 선전은 실적에서 나타난다. 큐셀을 중심으로 한 한화솔루션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6조 6159억 원)과 영업이익(5682억 원)을 거뒀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큐셀이 미국과 유럽에서 태양광발전소를 제작해 이를 현지에 매각한 매출이 1조 원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큐셀은 지난해 초부터 3조 원 이상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 카터즈빌에 잉곳·웨이퍼·셀·모듈을 한곳에서 생산하는 통합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이르면 올 하반기 해당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인근 지역인 돌턴에 있는 1·2공장과 합해 총 8.4GW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듈과 웨이퍼 등 태양광 부품의 80% 이상이 중국산인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증설에 나선 것이다.
기술력도 인정을 받는다.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지난달 초효율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의 상용화가 유력한 세계 상위 7개사 가운데 큐셀을 꼽았다.
다른 국내 태양광 주자인 OCI홀딩스도 최근 86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말레이시아의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번 투자로 이 회사의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은 기존 3만 5000톤에서 3년 뒤인 2027년에는 5만 6600톤으로 증가한다. OCI홀딩스 측은 “태양광 사업의 외연을 넓히고 원가를 절감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폴리실리콘 가격은 중국 업체들이 덤핑에 가깝도록 물량을 대규모로 투하한 영향으로 고점(2022년 8월)인 ㎏당 39달러 대비 80% 가까이 떨어진 ㎏당 8달러대를 기록하고 있다. 폴리실리콘 가격 급락은 큐셀이 지난해 11월 충북 진천·음성 공장에서 희망퇴직을 받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OCI홀딩스가 세계적인 태양광 확대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중국에 맞서는 한국 태양광 산업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11월 미국 대선에서 ‘반(反)재생에너지’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태양광 업계의 유일한 호재인 IRA가 매우 불안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수출입은행은 최근 발간한 ‘태양광 산업 동향 보고서’에서 “한국 태양광은 보호무역으로 중국산을 막고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경쟁력이 있는 시장이 없다”며 “미국 외 개발도상국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금융 지원이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