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몰의 폐업 건수가 역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e커머스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소상공인들이 줄폐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올해는 이들의 폐업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지난해 수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12일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인터넷 통신판매 업체(인터넷을 통해 가구·가전·식품·의류 등을 판매하는 업체)는 모두 7만 8580곳으로 역대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폐업을 결정한 인터넷 쇼핑몰은 2020년 4만 1119곳, 2021년 5만 3109곳, 2022년 5만 7251곳으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약 2만 곳 넘게 급증했다.
올해의 경우 이미 2월까지 두 달 사이에 폐업한 인터넷 쇼핑 업체만 2만 4035곳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폐업한 업체 수(1만 8586곳)보다 29.3% 증가한 것이다. 이 속도가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올해 폐업하는 업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폐업한 업체 중 상당수는 중국에서 생활용품이나 의류·신발 및 잡화 등 공산품을 구매한 뒤 국내에 웃돈을 붙여 되파는 방식으로 영업하던 곳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더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는 알리·테무 등 중국 플랫폼으로 옮겨가면서 매출이 급감해 결국 문을 닫았다.
"똑같은 원피스, 알리·테무선 반값"…의류 쇼핑몰은 하루 113곳씩 문 닫았다
“저 뿐만 아니라 국내 온라인 쇼핑몰 개인 판매자들은 대부분 중국산 제품을 사입할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제품을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에서는 반값에 파니까 경쟁이 안 되더라고요. 쇼핑몰 관리에 시간은 많이 들고, 돈은 안 되고…. 악성 소비자를 대응하는 것도 힘들어 폐업했습니다.”(최근 폐업한 온라인 쇼핑몰 사업자 A 씨)
특히 큰 위기감을 느끼는 분야는 패션 업계다. 12일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폐업을 결정한 의류 및 패션 관련 통신 판매 업체(온라인 쇼핑몰)는 2만 4314개로 최대치를 찍었다. 2022년과 2021년에는 약 2만여곳, 2020년에는 1만 7263곳이 폐업했다. 올 들어서도 2월까지 두 달간 폐업 신고를 한 의류 관련 쇼핑몰은 6878곳에 달했다. 한 달에 약 3400곳, 하루 평균 약 113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2월까지 폐업한 쇼핑몰은 모두 6195개에 그쳤는데 올해 2월까지 폐업한 쇼핑몰은 이보다 많았다.
작년 의류 쇼핑몰 10개 생겨날 때 4개는 폐업신고
앞서 국내 의류 관련 온라인 쇼핑몰은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전까지 의류 온라인 쇼핑몰은 매년 5만여 개씩 생겨나는 추세였는데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8만 3500여 개, 2021년 7만 3100여 개로 늘었다. 이달 중 상당수는 진입장벽이 낮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등에 입점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중국산 공산품을 사입하는 것 외에 별다른 판매 전략이나 제대로 된 비즈니스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폐업했다.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제품을 저렴하게 가져온 뒤 국내에서 웃돈을 붙여 판매하는 식으로 수익을 냈는데 소비자들이 중국 플랫폼을 활발하게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의류 관련 쇼핑몰의 인허가 대비 폐업률은 27%에 그쳤으나, 2022년 30.5%, 2023년 37.9%로 매년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의류 쇼핑몰 6만 4000여곳이 새로 장사를 시작할 때 2만 4300여곳은 문을 닫았다. 쇼핑몰 10개가 창업할 때 약 4군데는 폐업했다는 의미다.
같은 기간 알리의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역대 최대를 갱신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의 MAU는 2021년 2월 168만 명에서 지난해 2월 355만 명을 찍은 뒤 올해 2월 818만 명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사이 130%(약 463만 명)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직구 앱의 성장세에 여성 의류 등을 취급하는 패션 플랫폼의 실적이 쪼그라들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 공장에서 의류를 떼와 판매하는 셀러들이 모인 플랫폼의 MAU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박 모 씨는 “중국산 의류 등을 떼다가 쿠팡과 스마트스토어 등에서 팔았는데 초반에는 잘 팔렸지만 어느 순간 판매자들이 너도나도 같은 상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며 “최근에는 알리 영향으로 수익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K-쇼핑몰, 생존전략 없이는 알리·테무 영향으로 줄도산”
전문가들은 이들이 별도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지 않는 이상 줄폐업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중국 e커머스가 공산품·생필품·패션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상품을 초저가에 판매하다 보니 비슷한 품목을 파는 국내 업체들은 매출액이 줄고 폐업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판매자들이 보다 저렴한 제품을 들여오려는 노력을 하거나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이 중국 e커머스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생존 전략을 모색하지 않고 정부에 무조건 중국 e커머스를 규제해달라고 하는 것은 사업자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동일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소비가 증가하면서 너도나도 온라인 쇼핑몰을 창업하기 시작했지만 보통 온라인 판매자는 창업 3년 차 정도에 한계를 겪는 경우가 많다”면서 “처음에는 사업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들어왔다가 유동성 위기를 겪거나 성장 및 인력 관리의 한계 등을 경험하면서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