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을 둘러싼 치열한 디스플레이 전쟁의 핵심으로 8세대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라인이 떠올랐다. TV와 스마트폰 등 기존 디스플레이 최대 수요 산업이 정체기에 접어들며 태블릿과 노트북에 탑재되는 중소형 OLED 시장 선점 여부가 사업 향방을 좌우하는 열쇠가 됐기 때문이다. 8세대 설비는 기존 6세대 설비와 비교해 2배 이상 많은 패널을 생산할 수 있어 수익성을 결정짓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선제 투자에 이어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공정 설계로 승부수를 두자 중국 BOE는 3배에 달하는 투자금을 퍼부으며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034220)가 8세대 라인을 위한 신규 투자를 결정할지도 업계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해부터 4조 원을 들여 짓고 있는 8.6세대 IT용 OLED 라인은 옥사이드 박막트렌지스터(TFT) 기술을 활용한다. 옥사이드 TFT는 전자의 이동속도가 기존 물질 대비 10배 빨라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구현하기에 유리한 공정 방식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6세대 IT용 OLED 라인에서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방식으로 물량을 생산하고 있는데 8세대 들어 공정 방식을 바꿨다. 이는 원가경쟁력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LTPO 방식은 BOE가 내세우는 저온다결정실리콘(LTPS)보다 고급 기술에 속하지만 제조 공정이 복잡해 상대적으로 단가가 올라가는 면이 있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대 고객인 애플의 패널 공급사 선택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원가경쟁력”이라며 “신규 라인 투자 시 이러한 점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8세대 IT용 OLED 신규 투자를 결정한 BOE의 무기는 ‘물량공세’다. 중국 사천성 청두에 짓고 있는 8세대 라인 투자 액수는 삼성디스플레이의 3배인 11조 원에 달한다. 생산능력(CAPA)도 차이난다. 양산시점인 2026년 양 사의 예상 생산능력은 유리원장(디스플레이 원판) 기준 삼성디스플레이 월 1만 5000장, BOE는 월 3만 2000장이다.
기술 반격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초 LTPO OLED 양산에 성공한 BOE는 현지 스마트폰 업체를 중심으로 패널을 납품하며 기술 경험을 쌓고 있다. 애플을 겨냥한 8세대 라인 역시 LTPO 방식으로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8세대 투자 여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2021년 발표한 3조 원 규모 6세대 중소형 OLED 라인 증설로 수요에 대응하고 필요한 부분만 ‘핀셋 투자’ 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플 태블릿에 들어가는 주요 물량은 6세대 라인으로 충족이 된다”며 “내부에선 8세대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고 말했다.
거금이 들어가는 투자를 당장 결정하기엔 재무 부담도 상당하다. LG디스플레이의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2022년 215.3%에서 2023년 307.7%까지 악화했다. 2013년 OLED TV 패널 라인에 5조 원을 투자했지만 수율 달성 실패와 물동 확보 미비로 8년 적자를 감내해야 했던 쓰린 기억도 ‘투자 신중론’에 한몫을 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선 수익성 확보와 애플과의 장기적인 협업을 위해선 8세대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애플의 OLED 적용 범위가 태블릿에서 노트북, 모니터까지 확대되는 2026년부터 패널 업체 간 수주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애플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패널 기술 사양을 충족하기에도 선진 라인인 8세대가 유리하다.
투자 결정을 유보한 상황에서 LG디스플레이는 적극적으로 실탄을 마련하고 있다. 이달 초 유상증자를 통해 1조 3000억 원을 조달해 이중 4160억 원을 중소형 OLED 사업에 활용하기로 했다. 중국 광저우에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공장 매각에도 속도가 붙었다. BOE와 CSOT가 주요 매각 후보로 떠오른 가운데 이르면 상반기 매각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매각 자금은 1조 원 중후반대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