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다시 1380원대로 올라섰다. 외환 당국이 연일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 긴장 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환율은 1400원대 중반대까지 치솟을 위험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9.3원 오른 1382.2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역외 환율을 반영해 전 거래일 종가보다 8.1원 오른 1381.0원에 개장했다. 이후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발발하자 오전 10시 44분께 1392.9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장중 고가 대비 20원이 오른 것이다. 오후 들어 환율은 반락하기 시작해 2시 7분에는 1379.7원까지 내려갔다. 장중 10원 이상 변동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후 환율은 1380원 초반대에서 횡보하다 마감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미국 출장 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현지에서 긴급 대외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과도한 외환시장 변동에 대해서는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조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경계감을 가지고 범부처 비상 대응 체계를 강화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제한적이었다고 전해지면서 급등했던 외환시장은 안도감을 찾았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보복 공격과 관련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지만, 미국은 대(對)이란 공격작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확전 가능성을 낮췄다.
중동 리스크에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3.66% 올라 한때 배럴당 85.76달러에 거래됐고, 브렌트유도 3.44% 상승해 90.11달러를 기록했다. 장중 달러화도 상승했지만 이내 진정됐다. 달러인덱스는 이날 새벽 3시 18분 기준 106.11을 기록하고 있다. 장 초반 106.35까지 올랐던 것에서 하락했다. 이날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내비췄지만, 달러·엔 환율은 154엔대에서 거래되며 엔화 약세는 지속됐다.
외환 전문가들은 앞으로 환율 시장의 방향성과 관련해 중동 지역의 정세가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되면 환율은 1450원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며 “전쟁이 터지면 금 등 안전자산으로의 쏠림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고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는 약세 흐름을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 부총리는 야당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와 관련해 “지금은 민생이나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한 타깃(목표) 계층을 향해서 지원하는 것이 재정의 역할”이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어 “지금 재정의 역할은 경기 침체 대응보다는 좀 더 민생(에 있다)”며 “올해 예산을 잡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복지·민생에 예산을 할애했다”고 덧붙였다.
이창용 한은총재 "환율 안정시킬 재원·수단 보유" 재차 강조
한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앞서 17일(현지시간) 지속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킬 재원과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 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단을 누차 강조한 이 총재 발언은 결국 앞으로 상황에 따라 환율 방어를 위한 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 총재는 이날 워싱턴 D.C.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회의 계기에 열린 대담에서 "우리 환율이 시장 기초에 의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 비해 약간 떨어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전날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원·달러 환율 급등과 관련해 "시장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최근의 변동성은 다소 과도하다"며 "환율 변동성이 계속될 경우 우리는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준비가 돼 있으며, 그렇게 할 충분한 수단을 갖추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16일 한국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외환 당국은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선 바 있다.
이창용 "금리인하, 유가가 문제…환율 움직임 과도해 개입"
이 총재는 18일(현지 시각)에도 미국 워싱턴 D.C. 웨스틴호텔에서 조찬 기자간담회를 열고 "환율도 영향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유가가 90달러 밑에 머물지, 더 크게 오를 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중동 사태 영향으로 배럴당 90달러선을 넘었던 국제 유가가 언제든 급등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 국제 유가 오름세가 잠시 누그러들었지만, 주요국들도 금리 인하를 유보한 바 있다. 그는 주요국 통화정책 전망에 대해 "하반기 피벗(통화정책 기조 전환)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미국은 뒤로 가는 것 같고 유럽중앙은행(ECB)은 가능성은 열었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언급도 2주 전에 비하면 좀 더 (뒤로) 가야겠다는 쪽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다들 지난주 이란-이스라엘 사태 이후 결과가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유심히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금리 인하 '깜빡이'를 켤지 말지 검토중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선 "지난 금통위에서 아직 저를 제외한 5분의 금통위원은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게 성급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한 분은 내려야 할 가능성을 언급했다"며 "제가 깜빡이를 켤 상태가 아니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향후 물가 추이에 대해 "경제성장률 2.1%, 하반기 소비자물가 2.3% 전망 뒤에는 국제 유가가 80달러 후반에 머무른다는 전제가 있다"며 "유가의 평균뿐 아니라 기간도 봐야 하는데 현재는 예상보다 4~5달러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크게 치솟으면서 금융당국이 구두개입을 한 것과 관련해 "환율 수준이 펀더멘털에서 벗어난 정도가 클수록 외환당국 개입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다"며 "최근 이란-이스라엘 확전이 된 뒤에 며칠 간 환율 움직임은 어떤 메져(측정방법)로 봐도 과도했기 때문에 개입을 시사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