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국내증시

올 상장사 절반이상 공모가 하회…"무늬만 기관 솎아내야"[시그널]

[수요예측 유명무실]

◆ IPO 19곳 뻥튀기

공모가 대비 하락률 최대 40% 육박

IR 60곳, 수요예측엔 2000곳 몰려

투자일임재산 기준 50억 상향 등

기관투자가 자격 요건 강화 필요

여소야대 국면에 법 개정 쉽잖아

22대 국회 코너스톤 도입 등 관심을






기업공개(IPO) 수요예측 제도가 제 기능을 상실하면서 부풀려진 공모가가 ‘공모주 열풍’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개인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공모주 물량을 1주라도 더 받기 위해 공모가를 높게 부른 결과 주식시장의 ‘폭탄 돌리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금융 당국과 국회의 대응책 마련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한 일반 기업 15개 가운데 8개 기업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올 1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포스뱅크 주가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0.09% 떨어진 1만 860원을 기록했다. 포스뱅크는 올해 상장한 기업 가운데 공모가 대비 주가 하락률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공모가(1만 8000원)에 주식을 취득한 투자자라면 손실률이 39.67%에 달한다.

올 코스피 첫 ‘대어’로 관심을 모은 에이피알 역시 이날 종가(23만 2000원)가 공모가(25만 원)을 밑돌았다. 에이피알은 상장일(2월 27일)에 최고 46만 7500원까지 올랐지만 상장 직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렸다. HB인베스트먼트·오상헬스케어·이에이트·케이웨더 등도 현재 주가가 공모가 대비 10%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상장일에 주가가 급등한 뒤 곧장 하락세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를 시장에서 적정가격을 찾아가는 현상으로 해석한다면 애초에 공모가가 너무 비쌌다는 얘기도 된다.

관련기사



공모가가 시장의 기대 가격과 큰 괴리를 보이는 것은 기관투자가들이 수요예측 과정에서 과도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들이 받을 수 있는 공모주 물량은 한정된 상황에서 더 많은 물량을 받으려면 발행사가 제시한 공모 희망 가격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불러야 입찰에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오상헬스케어 수요예측 때 상단을 30% 초과한 가격을 적었는데도 물량을 배정받지 못했다”며 “최종 공모가가 (상단을) 33.3% 초과했으니 40% 초과 가격은 써내야 배정을 받을 수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IPO 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HD현대마린솔루션 수요예측 때도 공모가 부풀리기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이달 16일부터 5영업일 동안 진행된 HD현대마린솔루션 수요예측에 참여한 국내 기관투자가의 약 90%가 밴드 최상단가(8만 3400원)보다 19.9% 높은 10만 원을 희망 공모 가격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HD현대마린솔루션이 국내 기업설명회(IR)에 초청한 기관은 60여 곳에 불과한데 정작 수요예측에는 2000곳 안팎의 기관이 몰렸다는 것이다. IR에 참석하지도 않은 기관투자가의 ‘묻지 마 베팅’이 이뤄진 셈이다.

이는 기업가치 산정 역량이 떨어지는 기관투자가가 우후죽순 늘어난 영향이 크다. 2019년 전문 사모 운용사 설립 요건 중 자기자본 기준이 완화(20억 원→10억 원)됐고 2020년 공모주 시장이 주목을 받으면서 고액 자산가들이 설립한 투자자문사 등이 대거 늘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자산운용사 수는 2019년 297곳에서 지난해 말 470곳으로 증가했다. 투자자문사는 같은 기간 198곳에서 402곳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금융 당국이 2022년부터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 자격 요건에 ‘등록 후 2년이 지나고 투자 일임 재산 규모 50억 원 이상’이거나 ‘투자 일임 재산 규모 300억 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추가했지만 여전히 문턱이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융 당국은 이르면 하반기 수요예측 참여 기관투자가의 기준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마련되지 않았다. 기존에 수요예측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투자가의 반발이 만만찮아 여론 수렴에 어려움을 겪는 까닭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이 지난 정권 때부터 대안으로 제시한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 역시 여의치 않다. 이 제도는 공모가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금 같은 대형 기관투자가가 미리 특정 공모가로 공모 주식을 인수하고 또 일정 기간 보유하겠다고 약정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증권 신고서 제출 전 공모주 모집을 금지하는 현행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해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원만한 논의가 어렵다는 관측이다. 지난해 4월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내용을 포함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법안은 줄곧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번 국회가 지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김남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