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꿈의 기판으로 일컬어지는 유리 기판 상용화를 위해 공급망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제조 장비 회사와의 협력은 물론 삼성그룹 전자 계열 업체들과의 공동 연구개발(R&D)도 주저하지 않으면서 기술 선점에 나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조만간 독일 LPKF와 LPKF코리아, 켐트로닉스(089010) 등과 4자 간 기술 협약을 체결한다. 삼성전기가 LPKF, 켐트로닉스 등 제조 장비 회사들과 제조 공급망을 구축하고 연구를 함께 진행한다고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회사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던 CES 2024에서 유리 기판 사업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지 3개월 만에 밝혀진 일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와 두 회사는 유리 기판 제조에서 가장 핵심 공정인 유리관통전극(TGV)을 위한 장비를 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TGV는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서 촘촘한 미세 회로를 만들어내는 고난도 기술이다.
LPKF와 켐트로닉스는 전자 업계에서 유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로 유명하다. LPKF는 독일에 본사가 있는 기업으로 폴더블 유리 기술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다. LPKF는 2020년 후반 유리 기판을 양산에 적용하려고 하는 인텔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켐트로닉스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제조 공급망에도 속한 회사다. 디스플레이 패널에 들어가는 유리를 얇은 두께로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회사다. 삼성전기 측은 최근 켐트로닉스 본사를 수차례 찾아 유리 기판에 켐트로닉스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 기판은 칩과 전자기기 사이의 연결을 최적화하는 반도체용 기판이다. 유리 특성상 기존 플라스틱 기판에 비해 더 미세하게 회로를 새기면서 두께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열에 강해서 고성능 칩 결합에 유리하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결합이 최대 화두로 떠오른 만큼 앞으로 기판의 판도를 바꿀 신사업으로 꼽히고 있다.
삼성전기는 유리 기판의 핵심 공정부터 공급망을 구축하며 이 시장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올해 회사의 세종사업장에 시험 라인을 깔고 내년 시제품을 만들어 2026년 본격적인 양산 체제를 갖추겠다는 계획을 빠르게 이행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삼성전기는 국내외 유력 회사와의 파트너십은 물론 삼성그룹 계열사와의 협력에도 적극적이다. 회사는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유리 기판 R&D 협력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기판 결합에 대한 노하우, 삼성디스플레이는 패널 공정에서 확보한 유리 제어 기술 등을 공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CES 2024에서 취재진을 만나 “유리 기판 수요가 점점 늘고 기술 개발로 세 차례 샘플 개발에 성공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미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IT 기기 제조사들과 제품에 대한 논의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기의 강력한 라이벌은 해외는 인텔, 국내에서는 SKC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10년부터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투자해 유리 기판 R&D 라인을 세우고 공급망을 갖췄다. 펜스테이트주립대 등 미국 유력 대학과의 산학 연구, 현지 장비 공급사들과 탄탄한 소재·부품·장비 기술 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SK그룹 계열사 SKC도 자회사 앱솔릭스를 설립하고 미국 조지아주에 2억 4000만 달러를 들여 유리 기판 공장 설립에 들어갔다. 앱솔릭스는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AMD와 함께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아이씨디(040910)·HB테크놀러지(078150) 등이 앱솔릭스의 파트너사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