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가자전쟁 반대 시위가 1960년대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닮아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도 이번 시위의 여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매체들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과거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가디언은 우선 베트남전 때와 마찬가지로 대학가의 시위가 국가 정치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캠퍼스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논쟁, 여야와 여당 내 분열과 대립으로 점차 확대되는 모양새다.
시위의 진앙이 베트남전과 같다는 점도 주목된다. 1968년 베트남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반전운동의 선봉에 선 것은 미국 동부 명문대인 컬럼비아대학교였다. 컬럼비아대에서는 지난 18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들이 교내 기습적으로 텐트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네마트 샤피크 총장이 경찰을 동원해 강제 해산을 시도하면서 규탄시위가 미국 내 대학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컬럼비아대에서는 베트남전이 극단으로 치닫던 1968년 학생들이 캠퍼스를 점거하고 반전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수백명이 체포된 바 있다. 50년이 넘었지만 이번 시위에서도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양측이 곳곳에서 충돌하고 학생들이 줄줄이 연행되면서 국민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 후보인 현직 대통령이 시위를 중대한 리스크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텔레그래프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린든 존슨 전 대통령 간의 유사점을 조망했다. 존슨 대통령은 1965년 3월 처음으로 미군을 베트남에 파병한 인물이다. 텔레그래프는 바이든 대통령이 비록 지상군을 투입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지나친 애착 때문에 가자지구 전쟁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후보 출정식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성지와 같은 도시들에서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는 점도 베트남전 때와 가자지구 전쟁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민주당은 1968년 반전시위 당시 경찰이 시카고대 학생들을 무참히 진압하는 모습이 언론을 탄 뒤 대선에서 패배했다. 당시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렸던 곳은 시카고로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2024 전당대회 개최지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오는 8월 시카고에서 대선 후보를 공식 선출한다.
민주당이 승패를 가를 경합 주의 주요 도시가 아닌 '안방'으로 평가되는 시카고에서 전당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과거 1968년 시카고에서 열렸던 전당대회 때는 반전, 민권 운동가들이 모여들어 유혈사태가 빚어졌고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전당대회'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반전 단체들이 이번 시카고 전당대회에서도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1968년 시카고 전당대회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는 다만 베트남전 당시와 차이점도 있다고 언급했다. 우선 베트남전 때와 달리 이번 시위는 보다 빠르게 진압이 시도됐다고 평가했다. 앞서 텍사스주 공공안전부는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발생한 시위와 관련해 폭력시위의 정황이 없었음에도 신속하게 경찰력을 투입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반면, 1960년대 시위에는 수백 개의 대학교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참여했지만 이번 시위의 규모는 아직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복스는 또 당시에는 시위대가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과도 대치하는 등 공격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최근의 시위 양상은 아직 그 수준에는 미치지 않고 있으며 반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행동주의를 연구해온 데이비드 파버 캔자스대 역사학 교수는 "1960년대와 달리 지금은 학생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