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독립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올해 선거가 예정된 국가들이 적지 않은 가운데 표 계산이 우선인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금리 결정과 같은 중앙은행 정책에 간섭을 시도하는 움직임들이 일부 나타나면서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함에 따라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중앙은행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압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에서도 연방준비제도(Fed)의 행보를 정치적 논란이 제기된다. 당초 올 6월로 예상됐던 연준의 금리 조정 시기는 점차 밀리면서 선거에 임박한 시점과 맞물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연준의 금리 결정 시기는 올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며 대선 주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양상이다. 나아가 선거 이후 중앙은행의 개편 가능성도 언급되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1일 연방기금금리를 연간 5.25~5.50%로 또 동결했다. 지난해 9월 이후 6회 연속 동결이다. 이날 파월 의장은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차단하면서도 금리 인하에 나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다는 게 연준의 판단이다.
시장의 관심은 연준의 피벗 시점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약 49%로 보고 있다. 11월 인하 가능성도 약 42% 수준이다.
문제는 이들 시점이 미 대선을 앞둔 때라는 점이다. 고금리 고물가가 장기간 진행된 만큼 연준이 이 시가에 금리를 내리게 된다면 민주당 측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공화당 측에서 제기된다. 이에 연준이 정치적 논쟁에 말려드는 분위기다.
사실 미국에서는 백악관 등이 중앙은행 정책 결정에 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무너질 움직일 경우 장기적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이끌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이 점차 무너지는 분위기가 나타나 우려가 나오는 모습이다.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이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파월 의장을 두고 지난 2019년 ‘적’(enemy)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의 유일한 질문은 파월 또는 시진핑 주석 중에 누가 우리의 더 큰 적인가”라고 했다.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며 쓴 글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 2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을 두고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금리를 낮춘다면 아마도 민주당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선 전 금리 인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자신의 집권 시 파월 의장의 재임명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할 경우 연준의 독립성을 약화할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들이 중앙은행 정책 비전 초안을 작성해 연준의 규제는 백악관 검토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앞서 3월 선거 유세에 나선 그는 “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올해 안에 금리가 내린다는 종전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민주당 측도 마찬가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3월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 의원은 고 “연준 금리는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의 능력을 방해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추진을 위해서 고금리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NYT에 따르면 일부 민주당 전략가들은 바이든은 파월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압박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본받아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파월 의장은 이 같은 정치적 논란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경제에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한다”며 “모든 미국인을 위해 일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하며, 다른 건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