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일대의 토지 거래 중 절반 이상이 지분 쪼개기 형태의 거래로 나타났다. 전원 주택이나 물류창고 등 실 사용 용도가 아닌 추후 개발 호재를 기대하며 땅을 사간 외지인들이 대다수다.
8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을 통해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거래된 용인시 처인구의 토지를 분석한 결과 전체 8187건의 거래 중 57.2%인 4684건이 지분 거래 형식으로 거래됐다. 경기도 전체 토지의 지분 거래 비중(46%)과 비교해보면 10%포인트가량 높다.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용인시 처인구의 모든 토지가 반도체 클러스터의 ‘배후 단지’로 홍보되는 실정”이라며 “2019년 반도체 클러스터 용지 선정 이후부터 토지 거래가 활발하다 잠시 주춤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토지 매매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전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인접 지역 역시 개발이 진행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지분 쪼개기 방식의 ‘묻지 마 투자’가 성행한다는 뜻이다.
부동산 투기거래의 지표로 활용되는 ‘외지인 거래 비중’만 봐도 용인시 처인구는 경기도 평균을 상회한다. 올해 1월 용인시에 살고 있지 않는 외지인의 처인구 토지 거래 비중은 54.9%를 기록했고 2월에는 60%까지 치솟았다. 반면 경기도는 올해 2월 기준 49.8%에 그쳤다. 처인구 토지가 투기꾼들의 ‘쇼핑지’로 전락한 셈이다.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산 XX번지가 대표적 사례다. 양지면 양지리 산 XX번지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길목인 양지 IC와 인접해 있지만 보전녹지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개발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하지만 올해 1월 21일 대규모 소유권 이전등기가 발생했다. 40명에 달하는 투자자들이 토지 공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의 거주 지역은 인천과 서울, 경기도 수원 등으로 다양하다. 거래 가액은 330㎡(100평)에 1254만 원이었고 일부는 661㎡를 2512만 원에 매입됐다. 이 지분 거래는 올해 3월까지 이어졌고 총 33명이 이 토지를 공유하게 됐다. 수상한 거래는 이뿐만이 아니다. 4월에는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한 임야(보전녹지지역)를 1㎡씩 쪼개 14명이 ㎡당 11만 원에 거래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연구원은 “처인구의 토지 거래를 보면 전형적인 지분 쪼개기 방식의 기획부동산 영업으로 의심된다”며 “반도체 클러스터를 호재로 삼아 인근 지역의 토지까지 투자자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투기 세력이 몰리면서 용인시 처인구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토지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토부가 발표한 지난해 지가 상승률에 따르면 용인시 처인구의 토지 가격 상승률은 6.66%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도 용인시 처인구 지가는 1.59% 상승해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분 거래 방식의 투기 세력이 몰리고 있지만 지자체의 마땅한 제재 수단도 없다. 용인시 처인구청 관계자는 “지분 거래 방식이 불법이 아닌 만큼 제재할 방법이 없다”면서도 “용인시와 경기도 차원에서 부동산 투기 세력을 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러스터 용지가 발표되고 이미 토지 보상이 끝난 반도체 클러스터 호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은 산단 인근 추가 개발 가능성 때문이다. 클러스터에 도로가 확장되거나 산단 근로자들의 주거지 등으로의 개발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실제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의 주 진입로인 보개원삼로는 클러스터 가동 전부터 도로 확장에 들어갔다. 내년 3월부터 팹 건설 공사를 시작하면 하루 1만 5000여 명의 건설 근로자가 일하는 만큼 공사 차량 등으로 교통 혼잡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보개원삼로 확장 공사에 총 5만 7185㎡가 편입되면서 다시 추가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
보상 절차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반도체 클러스터의 가동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당장은 클러스터 조성과 관련이 없더라도 산업단지가 확장될 경우 인근 토지들 때문에 산단 가동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실제 전북 익산과 경남 창원의 국가산단들도 부지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토지 보상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도가 성급하게 반도체 클러스터를 위해 토지거래 허가 구역을 해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토지거래 허가 구역이 해제되면 해당 지역은 구청장의 허가 없이 토지거래가 가능하고 해제 전 제한된 토지 용도에 맞춰 허가받은 토지 사용 의무도 사라진다. 실제로 경기도는 지난해 3월 경기도 원삼면 전역을 토지거래 허가 구역에서 해제했다. 당시 경기도는 “개발을 위한 토지 보상이 마무리돼 투기 우려가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원삼면이 토지거래 허가 구역에서 해제되자마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토지거래 허가 구역 해제가 적용된 지난해 5월에만 원삼면의 토지 거래가 약 800건으로 불어났다. 이는 다른 군·구 단위의 한 해 토지 거래량과 맞먹는 수치다. 지난해 6월에도 경기도는 처인구 유방동 2필지(1만 3222㎡)와 양지면 1필지(5352㎡)를 추가적으로 토지거래 허가 구역에서 해제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와 용인시 등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지역별로는 상이하지만 4년 가까이 토지거래 허가 구역으로 지정했다”며 “더 오래 지정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 침해로도 이어질 수 있고 명분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