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傳燈寺)’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사찰로 알려졌다.
11일 인천시 역사자료관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375년(고구려 소수림왕 5)에 세워진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不蘭寺)로 전해진다. 하지만 1942년 편찬된 ‘전등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에서 전등사는 “신라 아도화상이 세운 바이니,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 절의 옛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전등사가 381년(소수림왕 11)에 창건된 진종사였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아울러 1916년 ‘전등사 대웅보전 급 대조루 제4도 중수기문’에도 “전등사는 아도화상이 세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海東鼻昌佛宇)”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하도화상이 고구려의 이불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과 같은 인물인지, 또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묵호자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에서는 아도화상을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인물인 묵호자와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전등사의 창건연대(381년)가 백제의 불교 공인 연대(384년)보다 앞선다는 기록 때문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불교 공인 이전에도 사찰은 세울 수 있다는 점, 당시 백제가 하남위례성을 수도로 하는 ‘한성백제’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한강의 길목에 있는 강화도로 불교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전등사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찰’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전등사의 첫 이름인 진종사는 ‘참된 종교’, 혹은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후 전등사로 이름을 불리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1282년)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이 계기라고 한다. 이후 ‘전등사’라는 명칭으로 고쳐 불리게 된다.
전등사는 조선시대 두 차례(1605년, 1614년) 큰 화재로 사찰 전부가 소실됐지만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해 1621년 2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 네 기둥 위에 원숭이 형상의 ‘나부상(裸婦像)’으로 유명한 전등사 대웅전(보물 178호)도 이때 중건됐다.
1707년(숙종 33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를 관리하는 사찰이 돼 전등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경기도 서부 일대의 사찰을 관장하는 수사찰(首寺刹)의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근대 개항 전, 전등사는 병인․ 신미양요 등 국란에서 나라를 수호하는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했다. 또한 창건 이래 많은 인사들이 꾸준하게 찾는 수도권 최고의 호국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전등사 경내에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 보물(5점)을 비롯해 인천시 문화재(10점)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