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웃음기 없던 비극의 시대, 은유로 세상을 풍자하다

연극 '웃음의 대학' 9년만에 컴백

극단 작가-검열관 해프닝 희화화

송승환·서현철 주연…색다른 매력

“천황폐하만세야~ 어디가니~”

젊은 배우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연기하자,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시종일관 엄숙한 표정으로 상대 배우를 노려보던 노배우는 “아니 지금 새나 말의 이름이 천황폐하만세란 말입니까?" 하고 호통 친다. 일본 작가가 대본을 쓴 연극 속 배우가 말이나 새의 이름을 ‘천황폐하만세’라고 짓고 희화화하는 모습이라니. 일제식민지를 기억하는 한국 관객에게는 어쩐지 이 장면이 통쾌하다.

관련기사



배우 서현철이 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연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연극열전배우 서현철이 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연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연극열전




배우 송승환이 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연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연극열전배우 송승환이 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연기하는 모습. 사진제공=연극열전


일본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미타니 코키의 대표작, ‘웃음의 대학’의 한 장면이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웃음의 대학’이 송승환·서현철 주연으로 9년 만에 다시 개막했다. 작품은 전쟁이 막바지에 있던 1940년대 웃음을 주는 희극을 만들려고 하는 ‘웃음의 대학’이라는 극단의 전속 작가와 희극을 없애버리는 냉정한 검열관이 벌이는 7일간의 해프닝을 보여준다. 검열관은 모두가 하나로 뭉쳐야 하는 전시에 사람들이 희극이나 보여 낄낄 웃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연을 불허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본 수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요구대로 수정을 하면 할수록 작품은 더욱 재밌어진다.

검열관 역에는 배우 서현철과 송승환이 더블 캐스팅 됐다. 9년 전에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서현철은 이미 우리에게 희극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합류한 송승환이 연기하는 희극은 어쩐지 낯설다. 그는 TV 속에서 대중에게 늘상 근엄하고 엄숙한 모습만 보여준 배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배우가 연기하는 검열관은 완전히 다르다. 송승환은 검열관을 다혈질적인 사람으로 그린다. 그가 연기하는 검열관은 초반에는 고압적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막 장난감을 손에 쥔 아기처럼 ‘헤헤’ 웃기 시작한다. 이런 표정은 철저하게 배우가 연습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 아니지만 후반부에서 귀엽게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반면 희극 연기의 달인인 서현철은 냉정하고 무뚝뚝한 검열관을 연기하지만, 본성은 감출 수 없다. 그는 “사람들이 나의 연기를 ‘애드립’이라고 오해할 때가 많은데 이 작품은 대본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원작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고 말했다.

작품은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거의 같은 자리에서 대화를 주고 받는 게 큰 흐름이다. 따라서 대사의 양이 방대하다. 대본을 외우는 일은 서현철에게도 어렵지만, 현재 몇해 전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4급 시각장애인이 된 송승환에게는 더욱 고역이다. 현재 그가 보는 세상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여 있고, 대본도 글자의 크기가 주먹 만큼 커야 읽을 수 없다. 최근에는 다양한 음성 변환 기술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듣고 외우고 있다지만, 대본을 외우는 것만이 연기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연기를 계속하기 위해 자신 만의 방법을 찾고 있다. 상대방의 표정을 알아야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리허설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다가가 연기를 가까이에서 보여달라고 말하고 표정과 동작을 외우는 게 대표적이다. 또 연극은 반복적으로 암전이 되고, 각종 장치들이 있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어 무대 위에서 수 차례 걸음 수를 세어가며 동선을 체크하는 것도 송승환 만의 방법이다. 공연은 6월 9일까지.


서지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