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눈 속에 반짝이는 눈동자, 굴곡진 광대와 커다란 입.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봤을 법한 캔디를 닮은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 동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로 현실의 어른들을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작가 이사라의 ‘원더랜드’가 7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펼쳐진다.
반짝이는 눈, 동심 가득한 원더랜드에 입장하세요
이사라는 1998년부터 사실주의적 형식을 띠는 작업을 시작으로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동심에 대한 기억과 동경,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작가다. 현재는 ‘원더랜드’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해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가 말하는 '원더랜드'는 동심(童心)과 호기심이 가득한 꿈의 세계인 동시에 순수한 마음이 발현되는 곳이다. 원더랜드에는 밝음, 어두움, 삶과 죽음이 모두 존재하는데, 신작 2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그 중 ‘사랑’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작가는 관람객이 전시를 보는 행위를 ‘원더랜드에 입장한다’고 표현한다. 원더랜드에 입장하는 문은 캐릭터의 반짝거리는 ‘눈’. 작가는 “눈은 원더랜드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으로 더 환상적으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 눈에 온 우주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눈을 그리는 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캐릭터의 눈은 분명 ‘회화’인데도 붓터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가 사탕 표면을 깨듯 날카로운 칼로 스크래치를 내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 작업해 눈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캔버스도 남다르다. 작가는 캔버스를 직접 만든다. 건축 재료 등 여러 재료를 섞어 나무 위에 10번 이상 반복해 바른 후 사포질을 한다. 이런 밑작업을 진행한 후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덧바르는 과정으로 밀도 높은 여러 층의 레이어를 쌓는다. 이 레이어를 날카로운 칼날로 긁어내면 가장 밑면에 발린 하얀색 물감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수행하는 심정으로 무수히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이해랑의 손녀+이석주의 딸=이사라 만의 원더랜드 완성
이사라는 한국 현대연극의 선구자인 이해랑의 손녀다. 또 하이퍼리얼리즘 1세대 화가인 이석주의 딸이기도 하다. 할아버지 덕분에 알게 된 연극과 아버지를 통해 배운 화가의 태도는 작가가 ‘원더랜드’라는 세계를 구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림을 캔버스에 한정하지 않되, 수행과 같은 ‘미술’의 과정도 놓치지 않은 것. 현대미술에서 아이가 그린듯한 캐릭터 그림에 대한 호불호는 크게 엇갈린다. 캐릭터 그림은 ‘쉽게 그렸다’는 편견을 가진 이들도 많다. 하지만 자신의 철학인 원더랜드를 구축한 이사라에게 그런 세상의 편견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작가는 오직 관람객들이 자신의 그림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데만 집중한다. 작가가 직접 조색하는 ‘원더랜드 컬러’가 이를 잘 설명한다. 그는 “작품을 가장 잘 살릴 수 있고, 관람객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컬러 선택에 굉장히 고민하고, 시각적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원더랜드 컬러’를 한번에 많이 만들어두고 쓴다”고 말했다. ‘원더랜드 핑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화이트와 레드 외에 여러 물감의 색과 안료가 첨가된다.
작가의 꿈은 80~90세가 되어도 동심을 간직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더랜드의 세계를 관람객에게 소개하고 설득하는 지속적이며 다채로운 작업이 필요하다. 작가는 ‘원더랜드에 무슨 일이’라는 제목의 웹소설도 발간했다. 소설은 작가의 캐릭터가 어딘가에 실존하는 원더랜드로 여행을 떠나면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그리고 있다. 책 속에는 작가의 최근 신작을 포함해 다수의 작품이 실렸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