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28㎓' 가뜩이나 사업성 낮은데…"재정 검증조차 없이 후보사 선정"

■스테이지엑스, 제4이통사 무산

주요주주 5개사 자본금 납입 안해

전체 2050억 중 500억도 확보 못해

입찰형식 주파수 경매 허점 노출

통신비 인하 정책 '생색내기' 그쳐


정부가 스테이지엑스의 28㎓(기가헤르츠) 주파수 할당 사업자, 즉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을 취소하면서 통신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들여와 경쟁을 활성화하고 가계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구상도 물거품이 됐다. 정부는 제4이통사 유치 계획을 지속 추진할 방침이지만 이미 통신시장이 가입자 유입 없는 포화 상태에 도달했고 신규 사업자가 할당받을 28㎓의 사업성도 낮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시장 진입의 조건이 까다로운 상황에서 정부가 제4이통사 유치 자체에 급급하지 말고 후보 사업자의 역량을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 취소 예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 취소 예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스테이지엑스의 후보 자격을 취소하며 제4이통사 유치에 또 한번 실패한 것을 두고 통신업계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된 결과”라고 입을 모아 평가했다. 2019년 기간통신사업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후보 사업자의 재정능력을 검증하는 절차에 허점이 생겼는데 정부가 개선 노력을 게을리 했다는 것이다. 등록제로 바뀌면서 정부는 후보 사업자의 기술 역량만 보고 재정능력은 주파수 경매 절차로 갈음하게 됐다. 허가제 시절 7번의 제4이통사 유치 과정에서 후보 선정조차 엄격히 이뤄졌던 것과 달리, 스테이지엑스는 4301억 원이라는 고액의 입찰가를 부른 것만으로 주파수 경매에 승리하고 최종 후보에 선정될 수 있었다.



허점은 금새 드러났다. 이날 강도현 과기정통부 2차관은 스테이지엑스가 당초 약속한 2050억 원의 자금 조달과 주주 구성을 기한 내 완료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스테이지엑스라는 법인이 당초 사업계획상의 스테이지엑스와 달라졌다고 판단했다. 스테이지엑스가 확보한 자금은 현재 500억 원 수준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지난해 12월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일부인 ‘주파수 이용계획서’를 통해 자금 조달을 사업 인가, 즉 주파수 할당 후에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과기정통부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서상원 스테이지엑스 대표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과기정통부의 설명은 취소 사유로 전혀 납득할 수 없다”며 “아직 취소가 확정된 것은 아닌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하게 다하겠다. 사업 의지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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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능력 검증 없이 반년 가까이 문제를 방치한 상황에서 자금 조달 완료 시점에 대한 이견이 불거지자 양측의 조율 자체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후보 자격 취소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은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다음 달 초까지 청문을 거쳐 취소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스테이지엑스는 청문 절차에서 소명에 나설 계획이지만 당장 자금 조달을 완료하지 않는 한 과기정통부의 결정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는 1년 전부터 준비한 8번째 제4이통사 유치 노력이 다시 물거품이 됐고 스테이지엑스 입장에서도 기술 개발, 인프라 구축, 인력 채용, 사무실 마련 등 관련 투자를 반년 가까이 진행하다가 사업권이 박탈된 만큼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두고 과기정통부는 약 2시간에 걸쳐 스테이지엑스 측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역시 재정능력 검증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며 이를 계기로 관련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정상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양측 다 문제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과기정통부에 있다”며 “허가제 체제에서 중복해서 재정능력을 검증하는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 관련 면제 조항을 넣은 건데 등록제로 바꾸면서도 이를 계속 유지했다”고 지적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도 “8번의 제4이통사 유치 사례를 돌아보면 결국 사업자의 재정능력이 시장 진입의 성패를 결정한다”며 “관련 심사를 강화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통신사들의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고 28㎓ 자체의 사업성도 낮다고 평가되는 만큼 어려운 사업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사업자를 고르기 위해서는 더욱 철저한 역량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28㎓는 통신 속도가 빠른 대신 사거리가 짧고 그만큼 기지국이 많이 필요한 데다가 현재 널리 쓰는 5세대 이동통신(5G)인 3.5㎓에 비해 차별화한 서비스도 없다는 한계가 있어 통신 3사도 포기한 주파수다. 안 교수는 “통신 3사와 함께 알뜰폰 사업자도 수십 개가 있다”며 “수익성이 낮은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를 등장시켜서 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부도 문제를 인정했다. 강 차관은 이 같은 지적에 “기간통신사업자 선정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종합적 연구반을 가동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개선해야 할 법과 제도를 추가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종합적 고민 없이 정책의 중간 성과를 홍보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과기정통부는 제4 이통 사업자 선정 과정을 언급하면서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한 부처의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4월 총선 직전 단말기유통법 폐지, 번호이동 지원금인 전환지원금, 통신 3사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 등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총선 후에도 실질적인 정책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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