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폭포수 같은 대화 쏟아낸 임윤찬…하반기에는 대장정 남았다

전설의 실황이 된 '전람회의 그림'

서울, 대구, 광주 찍은 보름간의 투어

다시 싱가포르, 유럽, 미국 대장정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임윤찬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목 컴퍼니지난 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임윤찬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목 컴퍼니




1951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2001년 프랑스 남부 오랑주 고대극장의 예브게니 키신에 이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연주의 새로운 역사를 더한 임윤찬이 국내 리사이틀 투어를 마쳤다. 이후 6개월 간 해외 투어 대장정에 나선다.



지난 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된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 2부. 1부에서 연주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를 통해 러시아의 계절감을 온 몸으로 느낀 후 인터미션 내내 여운에 젖어있던 관객들은 곧바로 새로운 시공간으로 이끌렸다.

임윤찬은 입장하자마자 곧장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 의자 밑으로 빨려 들어간 턱시도의 긴 꼬리자락을 빼지도 못한 채 연주를 시작했다. 임윤찬의 가이드로 화가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림들이지만 듣는 순간 그려졌다. 심장을 강타하는 첫 음 외에도 보이지 않는 심상을 그려지게 하는 임윤찬의 또 다른 재능이었다.

17일 부천 아트센터에서 진행된 공연에서는 합창석에 앉아 그의 왼손을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 기회가 있었다. 천둥우가 치기 직전의 혼돈스러운 하늘을 마녀가 휘젓고 다니는 것처럼 변덕스러운 리듬과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10곡을 지나 11곡의 하이라이트에서 빠르게 옥타브를 오가는 왼손을 촘촘하고 든든하게 맞춰주면서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오른손과 이어 거침 없이 절정을 향해 가는 임윤찬의 화려한 움직임에 평소에 둔해진 동체시력을 가동해야 했다.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임윤찬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목 컴퍼니지난 7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임윤찬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목 컴퍼니




그는 이번 투어 내내 거침없이 많은 대화들을 쏟아냈다. ‘전람회의 그림’에서 5/4박자와 6/4박자가 마디마다 바뀌며 곡 전체에서 다른 느낌으로 변주되는 ‘프롬나드(산책)를 거쳐 ‘난쟁이(제1곡)’.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것 같은 선율의 생생한 느낌에 집중하다 보면 이윽고 새로운 무게감과 빛깔의 프롬나드로 관객들을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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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제6곡은 거만한 부자와 비굴한 가난뱅이의 목소리가 겹쳐지는 데서 장관을 이뤘다. 이어 시장에서 벌어지는 수다를 표현하는 제7곡은 시장 좌판의 앞줄과 뒷줄을 파도타기처럼 오가던 대화가 사방으로 증폭하는 순간에 어떤 희열감을 느끼게 했다. 한 마디 말 없이도 그의 내면이 쏟아낸 폭포같은 대화들은 관객들의 모골을 송연하게도 했고 맥박을 높이기도 했다.

흔히 별 생각 없이 썼던 ‘건반을 치다’라는 서술어도 임윤찬의 연주 이후에는 새로운 서술어를 떠올릴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소중한 대상을 어루만지듯 건반을 쓰다듬고 토닥이고 튕기던 그는 절정에서는 때로는 우박처럼, 천둥 번개처럼 건반을 내려 꽂기도 했다. 건반을 치는 방식에도 수백 겹으로 이뤄진 밀푀유처럼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했다.

두 번의 공연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채 힘 없이 고개를 들 때 본 상기된 얼굴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함으로 남았다. 마음 속 모든 말들을 쏟아내 간절한 제의를 끝마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그는 아낌 없이 자신을 쏟아내는 연주를 9일 천안예술의전당, 12일 대구콘서트하우스, 15일 통영국제음악당, 19일 광주예술의전당 등에서도 선보여 관객들에게 잊지 못한 순간을 선물했다.

/사진 제공=제임스 홀/사진 제공=제임스 홀


임윤찬은 5일 간의 짧은 휴식을 취한 뒤 이달 28일 출국할 예정이다. 10월까지 싱가포르와 스위스, 영국, 스페인, 미국, 폴란드를 돌며 해외 공연을 한다. 특히 다음 달 네 차례 펼쳐지는 스위스 공연은 이미 예매 티켓이 거의 동이 난 상태다.

이어 11월 미국으로 돌아가 약 한 달간 10회 공연을 하는 강행군에 돌입한다. 특히 11월 28일부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할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프로그램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미국 일정까지 마친 임윤찬은 12월 초 귀국해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협연을 진행할 방침이다. 연주 프로그램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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