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대형 철강회사는 최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퇴직 임원이 중국의 한 철강사 관계자와 접촉을 하고 있어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모를 기술 유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 조선소 역시 국정원과 수시로 소통하고 있다. 메탄올이나 암모니아 운반선과 같은 신기술이 다수 적용된 친환경 선박 도면이 중국 조선소에 유출될 가능성이 항상 있어 국정원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조선소 관계자는 “앞으로 설계 도면이 전산화 되면 장점도 있지만 도면이 유출될 수 있는 보안 문제도 있는데 국정원도 이에 해외 무단 유출에 대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정원이 국내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과 관련한 정보 수집 활동을 확대하면서 기업은 물론 검찰 등 수사당국과 협조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올해 개정된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이 금지되며 해외 기술 유출 정보 수집에 힘을 싣고 있다. 이렇게 수집된 기술 유출 의심 정보는 검찰과 협력해 처벌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실제 국정원이 해외 기술유출을 적발해 검찰이 기소한 사례는 매년 증가 추세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9년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 건수는 14건에서 지난해 23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 기술 유출 건수는 같은 기간 3건에서 15건으로 크게 늘었다. 국정원이 2019~2023년 5년 간 적발한 해외 기술유출 사건은 96건으로 이중 69건(72%)가 중국과 관련된 유출이었다.
이 같은 기술유출은 즉시 검찰에 통보돼 수사가 시작된다. 세계 3위 국내 반도체 세정장비 업체 세메스의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사건도 국정원이 최초 사실을 적발하고 관련 정보를 검찰에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피의자 4명은 지난 1월 구속기소 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2022년 국내 한 자동차회사의 자율주행 기술을 무단 유출한 연구원을 적발해 기소된 사건도 국정원이 최초로 파악해 검찰과 공조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당시 주범인 연구원은 자율주행 기술 자료를 휴대폰으로 찍어 해외 반출을 시도하다가 국정원에 의해서 포착돼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음달 1일부터는 영업비밀 등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기준도 높아진다. 해외로 기술을 유출해 적발되면 기존 최대 형량이 9년에서 12년까지 높아진다. 초범에게도 곧바로 실형이 선고하는 등 집행유예 기준도 강화된다. 기술유출 수사를 담당하는 한 검사는 “핵심 기술 개발에 역할을 한 담당자들이 기술을 마치 자기 것으로 착각해 과욕을 내 기술 유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검찰도 수사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일벌백계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