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오늘의 올림픽은 미래의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아트씽]

[류지연의 MMCA소장품 이야기(5)]

올림픽 주제곡 공연 재구성…안정주作

개인의 경험·기억이 정치사회와 충돌

올림픽 전후 격변의 역사 일깨운 작품

1990년대 미술 조망 '백투더퓨처' 출품

안정주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 2016년,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8분 30초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안정주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 2016년,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8분 30초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안정주의 작품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공식주제가 공연 영상을 모아서 재구성한 영상작품이다. 작품명은 서울올림픽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제가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의 제목을 조합해 명명했다.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영상이미지와 사운드를 채집해 반복과 변형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영상작품으로 만들어왔는데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정치사회적인 현상과 연결되거나 혹은 충돌하는 지점을 담아내고자 했다. 16대의 브라운관 TV에서는 끊임없이 서울 올림픽과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공연장면이 분절된 이미지와 음향으로 나오고 있다. 9대의 브라운관으로도 보여질 수 있는 이 작품은 여러 장면이 단일하게 보이기도 하고 브라운관마다 다른 영상이 나오는 등 이합집산되는 영상의 특징으로 인해 일종의 매스게임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의 제작방식은 샘플링한 영상클립들을 DJ들이 사용하는 스트레치(늘이기), 리와인드(되감기), 크로핑(자르기), 트리밍(다듬기) 등의 리믹스 기법으로 다양하게 편집했다고 한다. 공식주제가, 개막행사, 경기 장면 중 일부분이 원본과 다른 속도이거나 짧은 프레임으로 반복됨에 따라 관람객은 낯익은 듯 하지만 낯선 영상작품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브라운관 화면의 흐릿한 영상과 노이즈 현상은 세계적인 행사를 통한 국가의 발전의지, 올림픽이 내세우는 희망의 메시지, 그 이면에 가려진 갈등과 모순, 이후의 여러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안정주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의 스틸컷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안정주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의 스틸컷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작가의 어릴적 기억 속 올림픽은 호돌이 마스코트를 그리고 흥겨운 음악과 영상이 가득찬, 마냥 재미있는 스포츠 게임이었다. 올림픽 이후 맞닥뜨린 세계화의 물결은 작가로 하여금 보다 나은 세상이 다가온다는 기대감도 가지게끔 하였다. 하지만 1992년부터 점차 흥미를 잃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올림픽이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국제화, 산업화, 환경문제, 경제적 효과, 부작용 등을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한 네프켄(Han Nefken)재단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제작했다. 레지던시란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예술가들이 일정기간 동안 체류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한 네프켄 재단은 네델란드 작가이자 후원자인 한 네프켄이 2009년 바르셀로나에 설립한 비영리 재단으로서 주로 비디오아트 작품을 수집함과 동시에 비디오 아트 분야 중견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레지던시는 미술공간의 대안적인 성격을 가지고서 적극적으로 설립되었는데 2000년대 이후 국내 국공사립미술관, 지자체, 재단, 문화기관 등도 운영하고 있다.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이 창작공간을 이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창작동인을 배태(胚胎)하고 교류의 장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예술가들이 한번쯤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안정주는 바르셀로나에서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역사, 정치, 문화 등을 체득하였고 한국과 바르셀로나의 접점으로서 올림픽이라는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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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주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의 스틸컷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안정주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의 스틸컷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담당 큐레이터가 이 작품을 1990년대 한국현대미술을 조망하는 소장품 전시의 첫 번째 작품으로 선보인 이유는 타임캡슐처럼 관람객으로 하여금 1988년, 1992년 올림픽 전후 격변의 역사를 상기하게끔 하기 위함이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성화는 이제 막 꺼졌다. 파리 올림픽은 프랑스 문화, 스포츠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는 야심과 함께 시작하여 폐막식은 다음 개최지인 LA 올림픽을 예고하는 톰 크루즈의 점프와 여러 음악가들의 공연으로 막을 내렸다. 미래의 우리에게 2024년 파리올림픽은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매우 궁금해진다.

안정주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8일까지 열리는 ‘백투더퓨처’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안정주 : 1979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5년 Video Music 제목의 개인전(아트포럼 뉴게이트)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2006년 A New Wave of Contemporary Asian Film(영국) 전시를 필두로 2009년 제4회 후쿠오카 아시아미술 트리엔날레,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 등 여러 중요한 미술관,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2014년 제5회 두산연강예술상, 2017년 제17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 헬싱키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스, 2008년 독일 쿤스트하우스 베타니엔 레지더던스, 2016년 뉴욕 두산 레지던스/바르셀로나 Han Nefken 재단, 2018년 런던 델피나 파운데이션 등 국내외 여러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작가 전소정과 2015년부터 협업작업을 했고 김유석,도재명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 ‘검은 밤’을 결성해 바이닐 ‘망상의 산’ 앨범을 내기도 했다.



▶▶필자 류지연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품수장센터운영과장이다.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전시기획, 미술관교육, 소장품연구, 레지던시, 서울관·청주관 건립TF 등 미술관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29년째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에식스대학교(Essex University)에서 미술관학(Gallery Studies)을 공부했으며,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겸임교수(2022~2023)를 비롯해 인천시립미술관·대구미술관 자문위원, 서울문화재단 전시 자문위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브 자문위원, 성북문화원·대안공간 공간291 자문위원, 증도 태평염전 아티스트 레지던시 심사위원 등을 맡고 있다.


아트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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