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제2금융

[현실 못 따라가는 법·세제] '영업구역 道 제한' 57년 전 법에 발목잡힌 지방은행

<5> 갈라파고스 규제에 갇힌 지역금융

시중은행은 거래망 확대하는데

전국 영업 막혀 확장력에 한계

기업·사람 이탈에 대출도 감소

이전 공공기관마저 주거래 외면

"대주주 지분 처분 유예 검토를"





지난해 7월 광주은행이 충격에 휩싸였다. 조선대가 주거래은행을 신한은행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조선대는 50여 년간 광주은행과 주거래은행 계약을 맺어왔다. 수십 년간 지켜왔던 ‘안방’을 내준 꼴이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들에 심각한 경고를 날린 사건”이라며 “최근 부산·울산 등 사실상 전국 모든 지역에서 시중은행들이 주거래은행은 물론 시금고 운영 경쟁에 뛰어들어 지방은행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은행은 지역경제의 균형발전에 필요한 자금 공급을 위해 1967년 ‘1도 1행주의’에 따라 10개의 은행이 설립되면서 처음 등장했다. 지역 소비자에게도 빈틈없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시중은행보다 완화된 조건으로 설립을 인가했다. 대신 지역사회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초기 지방은행의 영업 구역을 본점이 있는 ‘도’로 제한했다. 실제 은행법 제2조 10항은 ‘지방은행은 전국을 영업구역으로 하지 아니하는 은행’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57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 환경이 격변해 ‘전국 영업’을 하지 못해 확장에 실패한 지방은행들은 부침을 겪었다. 최근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iM뱅크(대구은행)를 제외하고 17개 광역시·도 중 부산·경남·전북·광주·제주은행 등 5개만 살아남았다.

◇기업·사람 떠나 먹거리 고갈=‘지방소멸’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지방은행의 먹거리는 빠르게 사라지는 추세다. 인구 감소로 가계대출이 줄어들고 부동산 공급도 정체되면서 주택담보대출 시장도 위축되고 있다. 게다가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 현상도 심화하면서 기업대출마저 여의치 않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지방소멸 2024: 광역대도시로 확산하는 소멸 위험’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130곳으로 대부분 지방이다. 전북의 경우 14개 시·군 중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소멸위험지역(92.9%)으로 분류될 정도다. 기업도 줄어들고 있다. 전북상공회의소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내 상위 1000개 기업의 소재지는 수도권 736개, 영남권 155개, 충청권 67개, 전라권 31개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크다. 부동산은 더 심각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6월 말 전국 미분양주택 중 지방 물량이 79.7%에 달했다. 지방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 부동산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지만 지방은행의 주담대·전세대출 잔액은 오히려 1분기보다 줄어든 곳도 있다”며 “사람과 기업이 줄어드니 부동산 수요도 감소해 영업할 시장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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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저 시중은행에 내준 지방은행=시중은행들은 전국 영업망 확대에 나서며 지방은행의 ‘필수 먹거리’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방은행들이 수십 년간 ‘텃밭’으로 여겼던 시금고 운영 시장이 대표적이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울산 시금고 입찰에 참여했고, 부산시 시금고 입찰에는 국민은행·기업은행·BNK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금리 시대에 저원가 조달처를 찾아 시중은행들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까지 영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의 혁신도시 이전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전국 혁신도시 공공기관 110곳 중 지방은행을 1순위 거래 은행으로 둔 곳은 영화진흥위원회(부산, 경남은행) 등 단 4곳에 불과하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역마다 공공기관이 있지만 대부분 시중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거래하고 있다”며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마저 지방은행을 외면하니 지방 이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행들이 지역 기업과의 강력한 유대를 통해 거래를 유도하는 ‘관계 금융’도 점차 힘을 못 쓰고 있다. 고금리 시대에 0.1% 금리도 아쉬운 기업 입장에서 경쟁력 있는 대출 상품을 찾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 6월 4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평균 대출금리는 약 5.53%로 5대 지방은행의 평균 대출금리 6.38%보다 0.85%포인트 낮았다. 지방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은 조달 비용 등 출발점이 시중은행과 다르다”며 “인터넷 등을 통해 금리 비교를 손쉽게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야 생존=은행법에서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자본금이다. 시중은행은 1000억 원, 지방은행은 250억 원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하다. 57년 전 법 도입 때만 해도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규모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5대 지방은행의 자본금은 모두 1000억 원을 넘어 시중은행 기준을 충족한다. 2015년 수도권 영업 제한이 풀린 후부터는 시중은행들과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또 지방금융지주는 은행·캐피털·보험 등 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난해 5개 지방은행의 전체 순이익이 1조 4505억 원에 불과해 신한은행(3조 679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획기적인 정책 변화와 개별 은행들의 노력 없이는 활로를 찾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형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지원해 은행 산업 전체의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은행법상 산업자본 보유 비율(4%) 규정에 따라 대주주가 지분을 처분해야 하기 때문에 매각할 수 있는 유예 기간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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