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끄트머리

문동권 신한카드 사장





어제는 처서였다. 더위를 물리친다는 뜻도 있고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도 있는데 올해 더위는 정말 유별나다. 굳게 믿었던 입추와 말복은 일찍이 더위와의 전투에 실패했고 전국 곳곳에서 ‘118년 만의 최장 열대야’를 기록했다. 오죽하면 태풍을 기다린다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조금만 더 견디면 여름의 ‘끄트머리’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끄트머리’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하는데 김밥 마니아 지인을 둔 덕분이다. 어느 날 식당에서 김밥을 주문했는데 “김 밖에 끄트머리가 최대한 많이 나오게 싸주세요”라고 하는 거다. 끄트머리는 김밥을 싸는 힘이 덜 들어가서 밥알이 적게 눌려 입에 들어가면 단맛이 더 느껴진다고 한동안 끄트머리 예찬론을 펼치는 모습에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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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는 순우리말이다. 사전적으로는 ‘끝이 되는 부분’과 ‘일의 실마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끝과 시작의 두 가지 뜻을 모두 품고 있다. 한마디로 욕심이 많은 단어다. 신기한 건 서로 짠 것도 아닌데 ‘마지막’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last’도 동사로는 ‘계속되다’라는 시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건강한 욕심 덕분인지 서로 다른 끄트머리가 만나는 지점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바다가 단적인 예다. 그곳은 풍부한 어종 덕분에 황금어장이 형성되고 만선을 꿈꾸는 어선들이 앞다퉈 몰려든다. 그래서 경영서적을 읽다 보면 “끄트머리(경계)의 기회에 주목하라”와 같은 메시지를 자주 접한다.

우리에게 이동의 편리함을 주는 내연기관 자동차도 약 100년 전 마차와 역할을 교대한 후 서서히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는 주인공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과 융합해 모빌리티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전기·수소차 등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치가 수명을 다해 새로운 가치로 대체되는 과정이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숙연한 마음도 든다.

잠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챙겨야 할 분들이 있다. 폭염으로 고생한 택배·건설·환경미화 종사자와 취약 계층이다. 안전 대책이나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마침 필자가 다니는 회사는 전국 53곳(7089점포)에 달하는 전통시장과 ‘상생·나눔 마케팅 제휴’를 맺고 있는데 폭염으로 손님이 줄고 아예 문을 닫은 점포도 있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 한편으로 많이 안타까웠다. 추석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더 많은 분이 전통시장을 찾으실 수 있도록 서둘러 여름의 끄트머리를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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