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쌀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비축미 방출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충돌하는 장면까지 연출되고 있다. 일명 ‘레이와(令和)의 쌀 소동’이다. 레이와는 20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로 올해 들어 쌀 부족이 사회 문제로 부각하자 현지 주요 언론들은 이를 ‘레이와 시대 들어 발생한 쌀 사태’라는 의미에서 ‘레이와 쌀 소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2일 니혼게이자이·마이니치 신문 등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민간 쌀 재고량은 156만 톤으로 1999년 통계 시작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일본 전국의 주요 소매점에서는 쌀 품절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8월 들어 쌀과 즉석밥 구매량은 전년 대비 1.5배로 증가했으며 가격은 40% 이상 뛰었다. 일부 즉석밥 제품은 재고 부족에 품절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8월 주요 쌀 관련 제품 판매가 증가한 것은 심각한 쌀 부족 상황에서 품절을 우려해 많은 소비자가 상품 확보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올해 들어 심각한 쌀 부족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폭염으로 생산량이 급감한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고온으로 인한 백화 현상 등 품질 저하가 발생했다. 또한, 인바운드 수요 회복으로 방일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 식사 수요가 늘었고, 난카이 해곡 대지진 임시정보 발표, 10호 태풍 등 재해 관련 이슈로 인한 사재기 현상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요인이 겹치면서 주요 마트 매대에선 쌀 상품이 동나는가 하면 일부 마트는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나섰다. 통상 소매점에서 5㎏, 10㎏ 단위의 쌀이 판매되지만, 주 간격으로 5% 이상 쌀값이 오르면서 일부 마트에서는 양은 줄이되 가격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4㎏짜리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무료 밥 리필 서비스를 제공해 오던 일부 식당은 ‘정식 메뉴’의 ‘밥 무료 리필 서비스’를 중단, 유료 전환했다. 한 식당의 오너 셰프는 “쌀 구매 가격이 지난해와 비교해 약 15% 상승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정부가 ‘9월 중 햅쌀 출하’를 이유로 91만 톤 규모의 비축미 방출을 거부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를 공개 비판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는 지난달 26일 “자체 긴급 조사 결과 소매점의 약 80%에서 쌀이 품절 상태였다”며 정부 비축미를 풀라고 요구했다. 그는 “실제로 매장에 쌀이 없고, 이는 오사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며 “언제까지 도시락에 밥 대신 빵만 넣어야 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이와 관련해 농림수산상은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때를 놓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축미 방출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농림수산성은 9월 중 햅쌀이 본격 출하돼 품귀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쌀값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햅쌀 가격은 전년 대비 20~40% 오른 상태다.
이번 레이와 쌀 소동을 계기로 일본의 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쌀 가격 안정을 위해 농가에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며 쌀 과잉 생산 억제 정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들이 장기적으로 일본의 쌀 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대규모 농가 육성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수출 확대 등 새로운 수요 개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