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오락가락 대출 규제로 시장 혼선, 언제까지 ‘은행 탓’만 할 건가


금융 감독 당국의 일관성 없는 대출 규제로 금융권과 수요자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4일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의 대출 억제 기조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발언이다. 지난달 초 금감원은 은행들을 불러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대출 자제를 압박했고 이후 은행들은 속속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렸다. 또 시중금리는 떨어지는데 대출금리만 ‘역주행’을 하자 이 원장은 “대출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들을 책망했다. 금융 감독 수장의 질책에 은행들은 유주택자 주담대 전면 금지,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등 아예 대출의 문을 닫는 쪽을 택했고, 자금 계획에 차질을 빚은 수요자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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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감독 당국의 오락가락 규제는 가계 빚 급증을 유발했다. 5대 시중은행의 월별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4월 4조 4346억 원에서 7월 7조 1660억 원까지 늘어났다. 7월 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연기가 시장에 왜곡된 시그널을 보낸 탓이 크다. 이후 가계대출은 8월에도 9조 6259억 원 급증하며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금감원이 고금리 시절 은행의 ‘이자 장사’를 탓하며 대출금리를 억누른 것도 가계 빚 관리 실패의 원인이 됐다. 그런데도 이 원장은 “은행들이 예상하지 못한 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 들쭉날쭉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당국의 섣부른 개입이 부작용을 낳았는데 그 탓을 은행에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당국이 나서 금융시장의 교란을 효과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면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 원장의 냉온탕 대출 규제는 가계 빚 폭증을 유발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한 통화 당국의 금리 인하 결정까지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다. 금융 당국이 일관된 억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가계 빚 리스크는 더 커질 것이다. 금감원은 이제라도 정책 실패를 자인하고, 은행들과 긴밀한 소통을 통해 명확한 대출 억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시장의 혼선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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