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예술이 된 '여성의 몸'…고정 관념을 허물다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展

익숙한 제도·환경 넘어 수평 관계로

신체가 가진 소통·연대의 가치 주목

亞 여성 작가의 실험적 작품들 선봬

아그네스 아렐라노의 ‘풍요의 사체’ 사진=서지혜 기자아그네스 아렐라노의 ‘풍요의 사체’ 사진=서지혜 기자




“창조는 반드시 파괴를 수반한다.”



필리핀 여성 작가 아그네스 아렐라노는 자신의 1987년 작품 ‘풍요의 사체’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풍요의 사체’는 한 여성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여성의 배는 세로로 길게 찢겨져 있고 배 안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빼꼼 얼굴을 내민다. 작가는 1978년 제왕절개로 딸을 낳을 당시 자신의 몸을 상상하며 이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제왕절개는 가모장제가 파괴되고 가부장제로 나아가는 포문”이라며 “몸 속에서는 뱀의 화신과 풍요의 상징인 쌀의 신이 나오며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지만 여성의 몸은 찢겨진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풍요의 사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3일부터 서울관에서 열고 있는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 2부에 소개된 작품이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신체성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주요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여성의 몸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아시아 11개국 주요 여성 미술가들과 함께 여성의 신체가 가지는 소통·접속의 가치에 주목하고 아시아 여성 미술이 가지는 동시대적 의미를 새롭게 관찰한다.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총 6부로 구성된 전시는 ‘비엔날레’와 비교될 만큼 실험적인 작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전체 전시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과 도쿄도현대미술관, 쿠마모토미술관, 필리핀국립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인도국립미술관, 미국 버클리미술관·태평양 영화기록보관소 등 국내외 기관의 소장품 및 국내외 작가의 신작, 그리고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작가들의 1990년대 작품 130여 점을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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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1부 ‘삶을 안무하라’에서는 식민, 냉전, 전쟁, 이주, 자본주의, 가부장제 등 아시아의 복잡한 근현대사 속에서 신체에 새겨진 삶의 기억과 경험을 표현한 아시아 주요 여성 미술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987년 설립된 여성주의 예술 그룹 ‘카시불란’의 창립 멤버인 필리핀 여성 작가 이멜다 카지페 엔다야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 섬에서 투쟁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돌봄을 이끄는 이들의 자매애를 복원하기’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가사 노동에 대한 문화 비평의 의미를 담은 윤석남의 작품과 베트남 여성 예술가의 삶을 다룬 남화연의 신작 영상은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 서로 같은 역사를 공유하며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킨다.

2부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에 전시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금기된 여성의 성과 쾌락을 향한 욕망, 이미지를 다루는데, 특히 쿠사마 야요이의 1967년 퍼포먼스 영상 ‘쿠사마의 자기 소멸’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대작들을 통해 도발적·도전적으로 가부장제 언어와 상징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다. 3부 ‘신체· (여)신·우주론’에서는 작가들이 서 있는 자리가 형성된 근원과 뿌리를 아시아 각국 고유의 민간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샤먼 등을 통해 탐구하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불의 ‘몬스터:핑크’와 한국의 토착 여신 마고와 일본의 무녀에 대한 오경화와 모리 마 리코의 영상이 이 자리에서 소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4~5부에는 여성 미술가들이 도심과 일상의 공간을 무대 삼아 진행한 퍼포먼스 작품이 등장한다. 작가들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예술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지속한다. 또 평범한 행위와 익숙한 시공간, 제도와 환경을 낯설게 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세상을 재인식하게 한다. 6부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몸'에서는 “나의 몸은 다른 몸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의 신체에 주목하는 작품이 전시된다. 또한 고정된 국가, 성별, 인종, 계급을 따르지 않는 사이보그의 횡단하는 신체도 만나볼 수 있다. 홍이현숙, 통웬민, 이불, 염지혜, 차오페이, 최재은, 아라야 라스잠리안숙의 작업과 함께 김나희와 정은영×키라라의 신작 등도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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