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지탱하는 ‘싱크탱크’인 국책연구기관을 떠나는 인원이 매년 3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떠난 인원 중 절반은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이었다. 정권 입맛에 맞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라는 압력이 심해진 데다 2012년부터 연구기관들이 세종시 등 지방으로 대거 이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23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연구기관을 떠난 연구원이 1845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말 기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연구기관에 종사하는 연구원 수가 6131명인 점을 고려하면 6년이 안 돼 30%가 넘는 인원이 떠난 셈이다. 이탈한 연구원 중 정규직은 882명(47.8%), 비정규직은 963명(52.2%)이었다. 우수 인력들이 사실상 평생직장을 박차고 나갔다는 의미다.
기관별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조세정책과 국제 정세 등 정교한 정책 대응을 다루는 기관들에서 특히 많은 연구원들의 탈출 행렬이 지속됐다. 종합부동산세·금융투자소득세 등 세금 하나하나가 정쟁의 중심에 서는 상황인데다가 지난해 재정을 강타했던 세수 펑크 탓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정세 급변으로 전문가 수요가 늘며 관련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이탈이 급증했고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둘러싼 갈등에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에서도 높은 이탈률을 기록했다.
일례로 국내 최고의 브레인 집단으로 불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우 95명이 나갔는데 이 중 65명이 정규직 연구원이었다. 조세정책을 설계하고 평가하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떠난 인원 157명 중 93명이 정규직이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도 정규직 연구원의 퇴직 비율이 높은 곳들이다.
이들은 왜 떠났을까. 국책연구기관 특유의 ‘상명 하달’식 문화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답이 정해진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보다는 대학에서 자유로운 연구를 추구하려는 동기가 높다는 것이다. 이는 세금, 에너지, 대외 정책 등 정권에 따라 지향점이 크게 바뀌는 분야를 다루는 기관의 이직률이 높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연구기관들이 서울에서 세종시 등으로 이전한 영향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취업 제안이 올 경우 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을 등지고 대학으로 이직한 관계자는 “국책연구기관에서 답이 정해진 연구를 하기보다는 서울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면서 “솔직히 지금 남아 있는 연구원들 역시 기회만 된다면 떠나고 싶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책연구기관을 떠난 연구원들의 이직 직전 연봉 현황에서도 이 같은 경향은 확인된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조세재정연구원을 떠난 141명 중 연봉 1억 원 이상을 수령하던 연구원은 12명이나 됐으며 KDI에서는 10명,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는 4명의 억대 연봉 연구원이 직장을 떠났다.
국책연구기관은 정부 정책의 산실인 만큼 고급 두뇌의 이탈이 잇따르는 것은 정책 부실 혹은 정책 일관성 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제안된 내용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등의 효능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숙련된 연구원의 과다 이직은 정책 연구의 연속성 및 연구 질의 저하로 귀결된다”며 “잦은 채용에 따른 채용 경비 증가와 행정 업무 부담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