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대란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안전상비약 품목 20개 중 9개는 살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판매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약사업계의 반발로 정부가 허용한 품목조차 소비자에게는 막혀있는 상황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2019년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을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 과제’로 선정한 뒤 지난해 새롭게 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아직 시작조차 되지 못했다. 2018년 마지막 지정심의위가 열린 지 6년이 넘도록 재개하지 않았다.
안전상비의약품 판매제도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2년 11월 심야·공휴일 약국 운영이 저조하자 국민의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약사법을 개정해 도입했다. 개정법은 24시간 연중무휴 점포들의 의약품 판매를 허용했다.
약사법 상 20개 품목 이내에서 지정할 수 있지만, 법 시행 당시 13개 품목(감기·해열 진통제 7개, 소화제 4개, 소염제 2개)만 판매가 가능했다. 그러나 이마저 한국얀센이 국내 생산시설 철수를 결정하며 타이레놀 80㎎, 160㎎의 생산을 중단했고 현재는 11개 품목만 판매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공공의료제도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해도 한국과 달리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에서 3만 종을 판매 중이다.
업계에서는 소비자 수요와 안전성이 높은 지사제, 화상연고 등으로 품목을 확대하고, 생산이 중단된 타이레놀 품목 2종에 대한 대체품도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용법과 용량을 주의해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비약의 확대 필요성에 대해 62.1%가 공감했다.
복지부는 지난 2017년 3월부터 2018년 8월까지 6차례에 걸쳐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에서 품목 조정 방안을 논의했지만, 대한약사회에서 ‘오남용에 따른 국민건강 저해’를 이유로 품목 확대를 반대하며 지지부진한 상태다.
소비자단체들은 심야약국이 부족한 소도시를 중심으로 편의점 안전상비약 판매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3년 6월 기준 전국 시군구 250개 중 정부 공공심야약국은 59곳,지자체 공공심야약국은 171곳에 불과하고, 공공심야약국도 문을 닫는 새벽에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안전상비의약품 매출은 2018년 504억원에서 지난해 832억원까지 늘었다. 이 중 가장 많은 판매가 일어난 시간대는 오후 9시~새벽 1시로 29.3%, 오후 5~9시가 27.7%로 그 뒤를 이었다. 약국 미운영 시간 매출이 74.3%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안전상비의약품은 전문 의약품 및 일반의약품과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바탕으로 이미 국민의 자기투약이 승인된 품목”이라면서 “전국 편의점에서 24시간 운영되고 있는 안전상비약제도는 추가 재정부담 없이 약국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