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2월 26일 북한 무인기가 서울과 수도권 상공을 침범한 지 1년을 앞두고 김명수 합참의장은 지난해 12월 5일 수도서울 영공 방어 임무를 수행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진지를 방문해 찾아 작전 현황을 점검하고, 빈틈없는 방공작전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김 의장은 장병들에게 “북한의 무인기 도발이 다시 발생하면 반드시 추격·격추하겠다는 각오로 임무를 완수해 주기 바란다”며 “방공작전의 성패는 수 초 내 좌우되며 즉각적인 반응이 승리의 관건이므로 책임감을 갖고 빈틈없는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지시했다.
서울 시내 고층 빌딩 위엔 수십 곳에 ‘빌딩 GOP’라 불리는 곳이 있다. 최전방 철책선에 있는 GOP(General Outpost·일반전초) 소초가 서울 도심 빌딩 옥상 위에서 운용돼 이렇게 부른다. 북한 무인기와 항공기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서울 초고층 빌딩과 주요 포인트 건물, 거점 아파트 단지 등에 이런 방공진지가 설치돼 있다.
물론 서울 시내 수십 곳에 ‘빌딩 GOP’가 있다가 지금은 상당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주요 거점에는 최근 합참의장이 찾은 수방사 예하 방공여단이 운용하는 방공진지가 운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빌딩 GOP는 수도서울 영공 방위를 위한 핵심 시설로 반드시 필요하다. 예컨대 북한이 올해 들어 24차례 내려보내는 다수의 쓰레기 풍선이 한강 상공을 통해 서울 도심으로 침투할 때 상황 전파와 감시·추격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딩 GOP는 군 작전을 지휘한 합동참모본부 수뇌부가 주요 상황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없어선 안될 부대(존재)인 건 이 같은 이유다.
고도 높게 지으려면 방공포대 설치 필수
그러나 최근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층수·층고 제한이 해지되면서 최근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여단이 운용하는 빌딩 GOP가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오세훈 시장의 대표적인 주택 공급·정비 역점사업인 신속통합기획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강남권 내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서초진흥아파트’ 재건축사업에 대한 군 당국의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 심의위원회 심의(이하 군보심의)’ 결과가 서초구청에 통보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강남역 인근에 남은 잠실운동장 네 배 규모 미개발지인 서초진흥아파트는 최고 50층 안팎 주상복합으로 탈바꿈한다. 경부고속도로변에 우뚝 솟은 ‘서울의 관문’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7월 이 같은 서초진흥아파트 재건축 신속통합기획안에 대해 서울시가 확정했다.
그 후속 조치로 군보심의를 의뢰했는데 군 당국, 즉 수도방위사령부가 일정 고도보다 높게 지으려면 병력과 무기를 상시 배치하는 방공포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통보하면서 해당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 도심 민간 거주지를 군이 사용으로 사용하는 게 맞느냐,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수방사는 강남 거점에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때문에 서울 영공 방어를 위해서 작전보완시설로 포대와 탄약고, 생활관을 옥상과 탑층에 설치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서울시민 수호를 위한 대공방어작전 상 불가피한 부분으로 서초진흥아파트의 계획 상 건물높이가 대공방어협조구역 높이제한 재량권을 초과해 해발고도를 낮추지 않는다면 작전보완시설을 구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방사와 서초진흥아파트 재건축조합 양측이 맞서면서 이 사업 추진을 주도한 서울시와 서초구청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재건축조합은 제네바협약까지 꺼내 들어 민간 거주지를 군사용으로 사용하거나 공격해서는 안 된다며 수방사의 판단에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며 압박하고 나섰다.
서초진흥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민간인 거주지에 군부대가 상시 주둔하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로 볼 수 없다”며 “전시도 아니고 이 같은 군 당국의 판단 근거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가능할 얘기”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수방사가 관련 규정을 내세워 작전보완시설 설치비용 조차 해당단지인 서초진흥아파트가 부담해야 한다고 통보해 재건축조합이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수방사가 요구하는 작전보완시설은 병력의 상시 주둔을 위한 병영생활관과 방공포 설치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는 배경은 서울 지역에 다수의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여러 곳이 똑같은 군보심의를 잇따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정비구역 지정 공람공고를 진행한 도봉구 ‘쌍문한양1차아파트’와 ‘창동상아1차아파트’도 수방사로부터 유사한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업계는 오세훈 시장의 역점 정책인 재건축·정비사업을 통해 40층이 넘어가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도시계획이 지속된다면 서울 내 모든 지역에서 유사한 문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방부는 서울 도심내 주거지역, 상업지역 등에 유사시 대공방어작전을 보장하기 위해 ‘대공방어협조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울시 고층 빌딩은 대부분 ‘대공방어협조구역’이 지정돼 건물 옥상에 대공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대공방어협조구역으로 지정되면 위탁고도 제한을 받는다. 통상 해발 163m(지반+건축+옥탑)다. 이 때문에 도봉구 내에 위치한 ‘쌍문한양1차아파트’와 ‘창동상아1차아파트’ 단지 등은 위탁고도가 100m가 채 되지 않아 작전보완시설 설치를 요구 받은 있는 실정이다.
조용했던 군사시설 설치 문제가 최근 논란으로 부각되는 것은 서울시가 관할구역 내 층수및 층고 제한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층수 제한이 사라진 후 고층으로 계획한 단지가 늘어나면서 수방사에서 서울시 등 행정기관에 재량으로 맡겨둔 ‘위탁고도’ 초과 문제가 발생해 수방사의 군보심의를 잇따라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수도서울 영공 방어를 위한 수방사의 기조는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게다가 대통령실이 서울 중심의 용산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비행금지구역(P73)과 비행제한구역(R74)과 맞물려 위탁고도 제한에 따른 빌딩GOP 설치는 불가피해 서울시의 아파트 재건축 고도 제한 폐지 정책 추진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자신의 고층 아파트 옥상에 군 부대를 주둔 하는 것을 누가 원하겠냐”며 “그러나 서울 전역이 대공방어협조구역으로 설정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려면 장병 생활관과 포대, 무기 등의 작전보완시설을 모두 재건축조합에서 기부채납이나 공공기여 해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서울시 층수 및 층고 제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수방사가 요구하는 작전보완시설 설치물은 예상과 달리 현실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어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민간인 아파트에 군 병력을 주둔하고 무기를 상시 운용하는 게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공방어진지는 시민 생명·재산 보호
도심 내 오피스빌딩 등은 특정 시간 이후엔 사람이 오가지 않아 방어진지 설치에 어려움이 없지만, 대단지 아파트는 24시간 주민들이 상주하며 실생활을 하는 곳이라 군 병력과 물자가 오가는 상황은 보안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자칫 주민과 군 부대 간 마찰이 빚을 수 있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강남구 삼성동 소재 아이파크삼성 처럼 주변 지역에 비슷한 높이의 오피스빌딩이 없어 방공포대를 설치하더라도 병력이 상주하지 않는 임시포대로 설치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수방사는 작전보완시설 설치는 불가피하다는 완고한 모습이다. 대공방어협조 구역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것으로, 대공방어작전에 제한이 되는 경우엔 서울 도심 내 재건축과 재개발 아파트는 물론이고 새로 지어지는 모든 고층 빌딩에 대해 관련 절차에 따른 방공포대 시설물을 요구하는 건 영공 방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수방사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도발 수위가 고도화되면서 유·무인기와 미사일 등의 위협이 커지고 있어 수도서울의 대공방어작전에 차질이 없는 보완하는 시설이 갖춰져야 고층 빌딩 및 아파트 건축에 동의할 수 있다”며 “군사시설은 최고층인 옥상에 설치하지만 주민이 출입할 수 없는 별도의 엘리베이터와 출입문 등을 구축하기 때문에 서울 영공 방어를 위한 작전활동에 시민들의 양해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