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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의 할리우드 리포트] ‘인디 영화의 미래’ 제시 아이젠버그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폴란드 여행을 떠난 두 사촌, 벤지(키어런 컬킨)와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가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제공=Searchlight Pictures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폴란드 여행을 떠난 두 사촌, 벤지(키어런 컬킨)와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가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다. 사진제공=Searchlight Pictures




제시 아이젠버그는 인디영화의 새로운 미래다.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이제 ‘선댄스 키드’다. 여느 인디영화 감독들처럼 직접 각본을 쓴다.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기로 유명한 그인데 영화는 상처와 아픔을 보듬고 성숙과 연민을 다룬다.



감독 데뷔작 ‘세상을 구했다고 생각되면’(When You Finish Saving the World)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 아들의 관계 회복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 주더니, 신작 ‘리얼 페인’(The Real Pain)에서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3세대인 두 사촌을 내세워 가족의 역사를 배경으로 오래된 갈등을 끄집어낸다.

두 편 모두 선댄스 영화제 초청작이다. 영화 ‘라라랜드’와 ‘가여운 것들’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거머쥔 엠마 스톤이 남편인 SNL 제작자 데이비드 맥커리와 제작했다. 엠마 스톤과 제시 아이젠버그는 2009년 개봉한 B급 호러 영화 ‘좀비랜드’로 만난 할리우드 절친 사이. 영화 제작자와 감독으로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 유쾌한 신경전을 벌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벤지 역할을 탐내던 아이젠버그에게 과한 욕심이라며 “그냥 해오던 괴짜 너드를 연기하면서 감독 역할에나 충실해”라고 조언한 이도 엠마 스톤이다.

참혹한 역사의 유적지를 온화한 매너로 안내하는 학구적 가이드 제임스(윌 샤프)로 인해 벤지(키어런 컬킨)의 화가 폭발한다. 사진제공=Searchlight Pictures참혹한 역사의 유적지를 온화한 매너로 안내하는 학구적 가이드 제임스(윌 샤프)로 인해 벤지(키어런 컬킨)의 화가 폭발한다. 사진제공=Searchlight Pictures


‘리얼 페인’에서 제시 아이젠버그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긴 돈으로 사촌 벤지(키어런 컬킨)와 함께 폴란드 홀로코스트 역사 투어를 떠나는 뉴요커이자 젊은 아버지 데이비드역을 맡았다. 윌 샤프가 연기한 다정다감한 제임스가 이끄는 투어 그룹에 함류한 둘은 어린 시절의 형제나 다름없던 끈끈한 유대감을 되살리지만 과거의 가족 비극과 씨름한다.



아이젠버그는 “가족의 고향인 폴란드를 찾아가는 두 사촌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 미국 인디 영화이자 버디 무비”라며 “영화는 아픔의 두 가지 표현, 슬픔과 고통을 보여 주지만 구체적으로 논의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두 가지 형태의 아픔을 의식적으로 보여줄 뿐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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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는 강박장애 등 일반적인 불안 장애가 있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 조깅을 한다고 언급하지만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 만큼 예외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픔에 대해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실제로 거의 표현하지 않는다. 반대로 키어런 컬킨이 연기한 벤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아픔을 극복하는 유형이다. 슬프면 그룹 앞에서 울어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그의 고통을 설명해야 직성이 풀린다. HBO ‘석세션’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키어런 컬킨이 감정 기복이 심한 벤지를 호연해 보는 이들까지 울고 웃는 아픔을 마주하게 한다.

3. 제시 아이젠버그는 2008년 아내와 함께 폴란드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이상한 계시’를 받고 영화 ‘리얼 페인’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사진제공=Searchlight Pictures3. 제시 아이젠버그는 2008년 아내와 함께 폴란드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이상한 계시’를 받고 영화 ‘리얼 페인’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사진제공=Searchlight Pictures


제시 아이젠버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3세대이다. 그의 가족은 2차 대전 중이던 1939년까지 폴란드에서 살았다. 영화 속 데이비드와 벤지는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유적지와 역사박물관 등을 함께 둘러보는데 마즈다넥 강제수용소 방문을 제외하고는 관광을 즐기는 모습이다. 두 사람에게는 홀로코스트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할머니를 잃어버린 슬픔이 더 고통스럽다.

아이젠버그는 “온라인에서 ‘홀로코스트 투어(점심 포함)’라는 광고를 우연히 발견했다. 우울할 정도로 뜻밖이었다.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유적지 투어업체는 미국 중상류층 관광객이 원하는 안락한 여행을 내세우고 있었다. 경외감과 충격, 역겨움이 뒤섞인 채로 광고를 봤지만 저 역시 관광객 중 하나가 되어 가족사의 끔찍한 장면을 보면서 편안함을 추구할 것 같았다”며 영화의 모티브를 밝혔다.

이 영화는 무엇이 진짜 고통인지 묻는다. 대량 학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데이비드가 느낀 강박증적 고통이 진짜 고통인지, 사촌 벤지가 삶에서 훨씬 더 심각한 일을 겪고 있는데 데이비드 자신이 불안 장애를 느끼는 게 타당한지 질문을 던진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저에게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영화다. 2차 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트 역사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개인적 슬픔에 관한 영화다. 그 동안 이 역사를 왜 무시했을까 자문해보니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제 가족이 폴란드와 그들의 역사에서 일부러 멀어졌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래서 다시 연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 ‘리얼 페인’은 오는 11월1일 미 전역에서 개봉하며 한국 개봉은 2025년 1월로 예정돼있다.

/하은선 골든글로브협회(GGA)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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