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이벤트에서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우승자에게 쏟아진다. 하지만 쏠쏠한 활약으로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주연급 조연’ 선수들이 없다면 흥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27일 지한솔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최고의 가을 축제 덕신EPC·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총상금 10억 원)은 이 같은 빛나는 조연들의 활약 속에 많은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겁 없는 플레이를 펼친 16세 아마추어 선수들부터 이번 대회를 끝으로 화려했던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 선수까지. 그들은 주연 못지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골프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꿀잼’ 드라마의 서막을 연 주역은 추천을 받고 참가한 아마추어 선수들이었다. 이번 대회에는 세 명의 아마추어 선수가 도전장을 냈고 양윤서(16·인천여방통고)와 김연서(16·진주외고)가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예선을 통과해 화수분 같은 KLPGA 투어의 선수 배출 능력을 증명했다.
특히 갤러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양윤서였다. 1라운드 2언더파 공동 7위에 올라 선배들 못지않은 기량을 선보인 그는 2라운드에서는 공동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리며 골프팬들을 놀라게 했다. 3라운드에서는 다소 주춤했지만 마지막 날 다시 반등하며 공동 9위로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4년 만에 정규 투어 산책에 나선 왕년의 ‘신데렐라’ 홍진주(41)도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2004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홍진주는 2006년 한국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코오롱 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듬해 LPGA 투어 풀시드를 거머쥐며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40세 이상이 뛰는 챔피언스 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그는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며 예선 통과에 성공했다. 이로써 홍진주는 2006년 4월 휘닉스파크 클래식에서 예선을 통과한 심의영(64) 이후 정규 투어 컷 통과에 성공한 두 번째 챔피언스 투어 선수가 됐다. 대회 전 “컷 통과가 목표”라고 밝혔던 홍진주는 예선 통과가 결정되자 응원을 위해 대회장을 찾은 아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홍진주의 아들은 KLPGA 투어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선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아들을 위해 자신의 경기가 끝난 후에도 대회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한 ‘은퇴 주간’을 가진 통산 7승의 김해림(35·삼천리)도 이번 대회를 빛낸 주역 중 한 명이다. 공식 연습일이었던 23일 절친한 후배 서연정(29·요진건설)이 보내온 ‘은퇴 축하’ 커피차를 보고 눈물짓는 것으로 이번 대회 일정을 시작한 그는 이튿날 은퇴식을 갖고 16년간의 투어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날 김해림은 그간 뒤에서 자신을 묵묵히 뒷바라지 해준 가족과 소회를 나누며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김해림의 후원사 삼천리의 임직원들도 대회장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김해림은 마지막 대회에서 컷을 통과하는 저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체 102명의 선수 중 공동 62위에 올라 예선을 통과한 김해림은 최종 라운드까지 5오버파를 쳐내 공동 68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대회에서는 새로운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둔 선수가 탄생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투어 15년 차 안송이(34·KB금융그룹). 2010년 정규 투어에 데뷔한 후 단 한 번도 하부 투어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그는 2022년 은퇴한 홍란(38·359개 대회)과 같은 최다 대회 출전 타이기록을 세웠다. 안송이는 남은 2개의 대회 중 한 대회만 출전해도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