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찬아, 맘마 먹자."
지난 10월 28일 서울성모병원. 예찬이 엄마는 수유 연습이 한창이었다. 다음날부터는 여느 갓난아기처럼 병실이 아닌 집에서 먹고 잠을 잘 예찬이를 맞이해야 하기에 몸도, 마음도 바빴다.
예찬이는 지난 5월 31일 재태 주수 22주 5일만에 512g의 몸무게로 세상 밖에 나왔다. 너무 작아 안기도 겁이 났던 예찬이는 약 5개월 만에 3.68kg이 됐다. 예찬이 엄마는 "생존율이 30% 정도이지만 의료진 모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에 희망을 걸었다"며 "예찬이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리고 있다는 현실이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30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512g의 초극소미숙아로 태어난 예찬이는 약 5개월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전일(29일)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예찬이는 결혼한 지 수 년만에 어렵게 생긴 첫 아가였다. 산모의 평균 임신주수는 40주다. 임신 22주를 넘겼을 뿐인데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출산이 진행되자 산모는 물론 아기 아빠와 가족들 모두 슬픔에 잠겼고 병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생존율이 30%'라는 말을 들은 예찬이 엄마와 아빠는 작명소를 찾았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름을 요청했고 지혜와 능력을 갖춰 순조롭게 나아가길 바란다는 뜻을 지닌 ‘예찬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다.
갑작스러운 조산으로 태어난 예찬이는 입원 초기 융모양막염, 진균, 녹농균 감염으로 혈압조차 측정하기 어려웠다. 면역이 약해 온몸의 피부도 다 벗겨져 있었다. 출생 초기부터 폐도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터라 폐에 구멍이 생겨 공기가 새면서 가슴안에 공기가 차는 기흉이 발생했고 응급 흉강 천자 시술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폐동맥 고혈압, 동맥관 개존증 등 몇 차례의 고비를 넘겼고, 눈의 망막 혈관이 잘 발달 되지 않아 생기는 미숙아 망막병증 수술까지 무사히 마쳤다.
예찬이 엄마는 아기의 병원 생활이 길어져 고된 시기에도 신생아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매일 마주치는 다른 이른둥이 엄마들을 도닥였다. 불안해 하는 엄마들에게 "아기 몸무게가 곧 늘어날 것"이라거나 "그 시기쯤에는 이런 검사들을 하게 될 것"이라는 등 직접 겪었던 경험을 나누며 든든한 선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예찬이 엄마는 아빠 손바닥만한 크기로 태어났던 예찬이에게 처음 수유를 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입안에 유축한 모유를 적셔준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삽입된 위관을 통해 모유를 먹일 수 있게 됐고 시간이 좀더 흐르자 예찬이 스스로 젖병을 빨아 먹을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작은 젖병을 가득 채운 100ml도 한 번에 비운다.
예찬이의 기적 뒤에는 숨은 영웅들이 있다.
예찬이 엄마는 “병실 면회 시간때마다 의료진들이 아기 상태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힘이 나는 좋은 이야기도 해 주셨다”며 “특히 신생아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입원한 아기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신 덕분에 안심이 됐다. 예찬이 백일 축하도 병실에서 챙겨주시고 너무 예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퇴원 소감을 전했다.
주치의인 오문연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처음 태어난 아기가 너무 작아 차마 만지지도 못했던 어머님이 혼자 숨 쉬고 젖병을 잘 빠는 아기를 안고 수유 연습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무사히 잘 자라 주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꼼꼼하게 챙겨준 김민수 교수, 작은 아기에게 쉽지 않은 흉강 천자 시술을 해 주신 김솔 교수, 폐동맥고혈압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때 아기를 살려내 주신 신정민 교수, 뒤에서 늘 챙겨주신 윤영아, 김세연 교수를 비롯한 신생아팀,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들과 산부인과, 안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등 협진해주신 모든 의료진들의 헌신 덕분”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만혼으로 인한 고령 임신, 난임 시술 증가로 인한 다태아 임신 등이 증가하면서 임신 37주가 되기 전 태어나는 미숙아(이른둥이)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출생 체중이 2.5Kg 미만인 저출생 체중아, 1kg 미만인 초극소 미숙아도 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예찬이처럼 성인 손바닥 크기 정도의 초극소 미숙아 중에서도 불가피하게 임신 주수 22주~23주에 태어난 400~500g의 이른둥이 치료에 매진해 왔다. 지난 9월에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다섯쌍둥이 분만에 성공해 많은 관심을 받았다. 고위험 임산부와 미숙아 치료를 책임지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협력해 생명을 살려온 소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다. 수익성에 연연하지 않고 여러 진료과 간 다학제 협진을 통해 선천성 질환, 미숙아 등 중증 신생아를 집중 치료하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확장 운영해 온 결과였다. 현재 서울성모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다섯 쌍둥이 외에도 또 다른 산모가 분만한 335g의 초극소 미숙아가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운영 이후 가장 적은 몸무게로 태어난 이른둥이는 김솔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주축이 돼 치료하고 있다.
윤영아 신생아중환자실장(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만삭까지 머물며 모든 장기들이 성숙해야 하는데, 불가피하게 일찍 태어난 미숙아는 뇌출혈, 호흡곤란, 심장, 괴사성 장염 등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들을 믿고 맡겨주시고 같이 인내해 주시는 보호자분들과 눈빛만 교환해도 아기들에게 어떤 게 제일 최선인지 서로 통하는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진, 간호팀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손발을 맞추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