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의대가 1·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균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게 1976년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호왕 고대 명예교수는 바이러스의 병원체와 진단법, 백신까지 모두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의학상 후보 물망에 올랐죠. 고대에서 한국 1호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왜 못 나옵니까?”
작년 11월 임기를 시작한 편성범 고대 의대 학장(재활의학과 교수)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혁신을 가속화해 개교 100주년인 2028년에는 세계 30대 의대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본교 의학과 85학번으로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이래 고대안암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는 편 학장은 “입학한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고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설렌다”고 했다. 취임 당시 “가슴이 떨리는 학교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건 그런 진심에서 우러나온 표현이었다.
편 학장은 “고대 의대에는 최초의 기록들이 많다”며 “1959년 신경외과학교실, 1970년 재활의학교실, 1974년 성형외과학교실, 1976년 법의학교실 2000년 의학교육학 교실 등 국내 최초로 창립한 교실만 꼽아도 다섯 개나 된다”고 소개했다. 그런 자부심 만큼 고대 의대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는 안타까움도 컸다. 취임 이후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게 달려온 이유다.
고대 의대는 30년 넘게 의학교육의 중심축 역할을 해 온 제1의학관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치고 올해 초 개관했다. 최근에는 정릉 메디사이언스파크 정몽구관의 증축·리모델링을 통해 국내 최정상급 의학교육·연구 인프라를 갖췄다. 지난 5월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학생 교류 협정을 체결하는 등 해외 유수 대학과의 네트워크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선진의학 시스템과 임상 경험을 제공해 글로벌 인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일념에서다. 이번 협정으로 재학생들은 의학과 4학년 전공 탐색기간 및 선택 임상실습기간에 존스홉킨스 의대생과 동일한 조건으로 실습할 수 있다. 예일대와는 글로벌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협력한다. 당장 내년부터 고대 의대 졸업(예정)자에게 임상 의사과학자와 기초 의과학자 프로그램 과정의 진학 기회가 주어진다. 예일대가 자체 재원으로 학비를 일부 지원할 뿐 아니라 학부부터 박사까지 연계되는 학위 과정 마련도 논의하고 있다.
편 학장은 “의정 갈등 사태로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어려워진 데 대해 큰 책임을 느낀다” 면서도 “글로벌 의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야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언젠가 돌아올 학생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의대에서 교육을 받고 실습하며 글로벌 연구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벨생리의학상의 산실이 되지 않겠냐는 얘기다. 그는 “아픈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사회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으려면 유연하고 융합적인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 며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세계 의학을 선도하는 의대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