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보행통로’ 조성을 약속한 재정비사업 조합이 아파트 준공 후 이 길을 막을 경우 매년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되면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많은 아파트 단지가 ‘불법 담장’을 설치하며 단지 개방을 거부하고 있지만 구청이 일회성 벌금을 매기는 것 외에는 개방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12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국토교통법 개정안에 대한 각 지방자치단체 입장을 듣고 있다. 개정안은 지구단위계획을 위반해 지어진 건축물과 공작물의 소유자·관리자·점유자에게 3000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1년에 최대 두 번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지구단위계획 및 정비계획에 공공보행통로 조성을 명시한 신축 아파트는 통로를 폐쇄할 경우 매년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공공보행통로는 대단지 아파트 입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기존에 이용하던 보행 동선이 사라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수년 전부터 정비계획에 본격적으로 반영됐다. 특히 서울시가 지난해 3월부터 공공보행통로를 건설하면 용적률을 최대 10% 늘려주면서 서울 재건축·재개발 조합 중 상당수가 정비계획에 공공보행통로를 포함하고 있다. 서초구 신반포2차(4.86%), 중랑구 면목7구역(5.9%), 강동구 천호A1-1구역(10%) 등이 공공보행통로 조성을 약속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았다.
문제는 아파트를 일반에 개방하는 것을 꺼리는 주민들이 많다는 점이다. 강남구는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래미안블레스티지 등이 허가 없이 아파트 내외부 경계에 담장을 설치하자 조합장을 경찰에 고발한 바 있다. 서초구·성북구·은평구 등에서도 ‘아파트 불법 담장’을 둘러싼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시에서 공공보행통로 조성을 권장하고 있어 계획에 넣었지만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치안 문제를 우려하는 주민도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현행법상으로는 주택법 위반에 따른 일회성 벌금 외에는 공공보행통로 미개방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서울시가 올해부터 공공보행통로에 지상권을 설정해 사용 권리를 확보하기로 했지만 지상권 위반은 민사 소송 대상이어서 제재와는 거리가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공공보행통로는 지속적인 개방이 중요한데 현재 제도로는 사후 관리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 법안 내용대로 (국토계획법이) 개정되면 제재 범위가 과도해질 위험이 있어 각 지자체와 자치구, 주민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