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러, 우크라에 ICBM 발사”…서방 장거리 미사일 본토 타격에 '맞불'

우크라 美 에이태큼스 이어

英 스톰섀도 발사에 '보복'

크렘린궁, 사실 확인 거부

서방·러 충돌 위기 고조 속

'트럼프 복귀 전 매듭 짓자'

美, 군사지원 패키지 승인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군박물관에 모인 학생들이 20일(현지 시간) 세계 어린이날을 맞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어린이 희생자의 수인 659명을 촛불로 쓰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군박물관에 모인 학생들이 20일(현지 시간) 세계 어린이날을 맞아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 어린이 희생자의 수인 659명을 촛불로 쓰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21일 오전(현지 시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사용한 것은 미국·영국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를 타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데 대한 맞불 차원으로 읽힌다. 19~20일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전술 탄도미사일인 에이태큼스(ATACMS)와 영국의 순항미사일 스톰섀도를 연달아 발사했는데 앞서 러시아 측은 이런 시도가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 공격 가능 범위를 넓힌 ‘핵 교리(핵무기 사용 규정)’ 개정안에 공식 서명하면서 경고를 행동으로 옮겼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ICBM을 발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긴장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이날 오전 5~7시 러시아군이 아스트라한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 지역을 향해 ICBM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드니프로는 우크라이나의 군사 장비 생산 및 수리를 맡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현지 매체를 통해 이번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RS-26 루베즈’는 최대 사거리 5800㎞에 최대 속도가 마하 20(2만 4480㎞/h)의 극초음속 미사일이다. 최대 16개의 분리형 독립 목표 재돌입 핵탄두(MIRV)를 탑재할 수 있다. 각 탄두의 위력은 100∼900kt로 알려졌다. 또 최대 5MT(TNT 500만t) 위력을 내는 극초음탄두는 1개만 실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가 21일(현지 시간) 러시아로부터 첫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한 중동부 산업도시 드니프로에서 건물에 붙은 불을 소방관들이 끄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해당 미사일이 러시아 카스피해 인근의 도시 아스트라한에서 발사됐으며 드니프로의 기업과 주요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우크라이나가 21일(현지 시간) 러시아로부터 첫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한 중동부 산업도시 드니프로에서 건물에 붙은 불을 소방관들이 끄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해당 미사일이 러시아 카스피해 인근의 도시 아스트라한에서 발사됐으며 드니프로의 기업과 주요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크렘린궁은 ICBM을 발사했다는 우크라이나군 발표에 대해 공식 확인을 거부했다.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ICBM 발사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요”라며 “군에 연락하기를 추천한다. 이 주제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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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러시아가 ‘RS-26 루베즈’를 발사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해당 미사일은 음속의 5배로 비행하기에 미국이 지원한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으로는 격추하기 힘들고 최대 사거리도 58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이번 발사 소식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군의 발표 외에는 아직은 확인된 것이 없지만 효과는 뚜렷하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방공망을 뚫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재래식 미사일을 발사해 메시지를 보내려 시도했고 아마도 성공적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육군 소장으로 퇴역한 마크 맥칼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드니프로에 처음으로 (ICBM을) 발사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으로부터 새로 받은 장거리 미국 미사일인 에이태큼스와 영국의 스톰섀도를 사용하는 것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면 러시아도 같은 장거리 ICBM을 사용해 타격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ICBM의 사거리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기에는 과도해 보이지만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런 미사일을 사용하면 러시아의 핵 능력을 상기시키고 (미국·영국 등 서방을 향해) 잠재적 확전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러시아의 ICBM은 이론상 아스트라한에서 미국 동부 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는 6200마일(9977㎞) 이상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핵무장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무기의 사용이 확인되면 이는 러시아가 미국을 향해 보낸 강력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다만 러시아가 핵 사용 조건을 완화하고 ICBM까지 발사했지만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는 않다는 분석이 현재로서는 우세하다. 러시아 핵 전력 전문가인 유엔군축연구소(UNIDIR)의 파벨 포드비그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가능한 선택지로 검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 현재 러시아군은 전진하는 중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45년 이후 처음으로 실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비난을 받게 되고 향후 정세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는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포드비그 선임연구원은 “핵무기 사용은 정말 심각한 도박이 되겠지만 러시아가 이를 감수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더타임스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날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용 탄약, 155㎜와 105㎜ 포탄, 박격포탄, 대전차미사일 등 2억 75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군사 지원 패키지를 승인했는데 여기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용 금지 선언을 했던 대인지뢰도 포함됐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기계화 부대 대신 보병을 앞세우고 있는 러시아의 전술 변경에 따라 러시아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진 부채 46억 5000만 달러(약 6조 5000억 원)를 탕감하는 방안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도 러시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피터 스타노 EU 외교안보담당대변인은 21일 러시아군이 ICBM으로 우크라이나 영토를 공격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푸틴 대통령 측에 책임이 있는 ‘명백한 확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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