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창작과 저작권 보호는 자전거의 두 바퀴와 같아요. 두 바퀴가 균형을 잡아야 제대로 나아갈 수 있죠. K콘텐츠를 향한 전 세계의 사랑이 지금처럼 뜨거울 때 이 열기를 계속 이어가려면 저작권 보호에 더욱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K콘텐츠 보호의 최전선에 선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보호원에서 만난 자리에서 저작권 보호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2016년 설립된 저작권보호원은 저작권 침해 단속과 수사 지원 등 저작권 보호 업무를 수행하고 관련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저작권은 기본적으로 사적 권리이기 때문에 해외는 저작권자가 권리 침해에 직접 대응해야 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저작권 보호를 저희처럼 공적 기관에서 수행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보호원은 저작권자로부터 권리 침해에 대응하는 권리를 위임받고 있죠. 창작자들이 일일이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화 관련 공공기관임에도 결코 말랑말랑한 곳은 아니다. 첨단 범죄 수사에 활용되는 저작권 디지털포렌식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국내외 온라인 콘텐츠 불법 유통 현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이런 첨단기술을 활용해 증거 자료 확보 등으로 사법 당국의 수사를 뒷받침한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는 2008년까지 미국무역대표부(USTR)로부터 매년 지적재산권 ‘감시대상국’으로 분류됐다”며 “그만큼 저작권을 포함한 지재권 보호에 소홀하고 관심도 낮았지만 2008년 저작권 특별사법경찰이 발족하고 저작권보호원이 설립되면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불법 복제물 이용률은 5년 연속 감소하고 있고 저작권 보호에 대한 종합 인식도 역시 꾸준히 나아지는 추세라고 그는 덧붙였다.
K콘텐츠, 지식재산권 무역흑자 견인…11년 연속 흑자
박 원장은 “세계적인 한류 열풍에 힘입어 저작권 무역수지가 지난해까지 11년 연속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류는 우리나라 지적재산권 전체 무역수지 흑자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의 경상수지 통계를 보면 지난해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1억 8000만 달러 흑자로 이 중 저작권 흑자는 22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허권과 상표권 같은 다른 분야의 적자를 저작권 흑자로 메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저작권 흑자 폭은 3년 만에 거의 7배 수직 상승했다”며 “K콘텐츠의 위상을 드높이려면 창작물을 보호하는 데도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해외로부터의 저작권 침해 대응이다. 저작권 침해는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둔 사이트를 활용하거나 불법 복제본을 유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보호원은 동남아시아 3개국에 별도 사무소를 운영하고 현지 로펌을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것 외에도 해외 언어별 대응 전담팀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모니터링 대상 언어 또한 기존 6개국에서 올해 아랍어와 스페인어·러시아어로 확대한 데 이어 내년에 추가로 늘릴 예정이라고 박 원장은 설명했다.
보호원은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지난해 해외 K콘텐츠의 불법 유통량이 영상 1억 1100만 개, 웹툰 2억 3900만 개로 각각 파악하고 있다. 박 원장은 “현재 해외 1만여 개 사이트를 상시 감시 대상으로 분류해 추적·감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해외 사이트에서도 일부 콘텐츠가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저작물이 미국의 한 사이트에 불법으로 올라와 있어 문제가 됐다”며 “미국 저작권법(DMCA)에 따라 침해 저작물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방법을 저작권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시정 조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불법 복제물 이용률이 19.5%인 점을 감안하면 콘텐츠 산업 매출액 147조 원 가운데 28조 원이 저작권자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누가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겠습니까. 콘텐츠 제작자들이 창작의 동력을 잃게 되고 그 결과 질 높은 콘텐츠가 제작되지 않으면 소비자 역시 이를 향유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그는 “우리나라 저작권은 등록 절차나 별도 표시 없이도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발생하는 ‘무방식주의’ 원리를 따른다”며 “사용 허락 없는 콘텐츠 이용 자체가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침해 예방과 차단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이용할 때 제값을 당연히 치르는 ‘내돈내산’ 하는 인식과 자세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