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대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의 절반 가까이가 연내 꿈의 지수인 ‘오천피(코스피 5000)’ 달성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기)’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코스피가 강세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CEO들은 ‘인공지능(AI) 버블’ 우려에도 불구하고 ‘AI·반도체주’를 올해 가장 유망 종목으로 꼽았다.
서울경제신문이 4일 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삼성·KB·하나·메리츠·신한투자·키움·대신증권 등 10대 증권사 CEO를 대상으로 신년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44%(4명)는 연내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상단 밴드가 5000을 넘어 5500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코스피 지수 5500을 예상한 증권사 CEO는 “올해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과 함께 AI 설비투자 사이클 지속에 따른 반도체 업종 중심의 이익 증가로 국내 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5%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국내 증시의 흐름이 올해도 계속된다는 판단이 우세한 것이다. 이 밖에 코스피 지수 상단 밴드가 4600 이상(22%)이거나 4900(11%)이라는 답변도 있었다.
올해 국내 증시가 활황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주주 환원 환경이 강화돼야 한다는 응답이 30%로 가장 많았다. 이와 관련해 한 증권사 CEO는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원인으로 지적됐던 주주 가치와 권익 개선,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의 제도적 개선은 상당 부분 이미 진행됐다"면서 "올해는 주요 기업들의 (정책) 참여 여부에 따라 코스피 지수 부양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달러 환율 안정화(20%)를 주요 과제로 꼽은 의견도 제기됐다. 지난해 연평균 환율은 외환위기 때를 웃도는 1421원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돌파했다. 환율 상승은 물가를 자극해 기준금리 인하 지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비용 상승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로 이어져 국내 증시 상승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코스피 상승 동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변수로는 ‘AI 산업 수익성 악화(30%)’와 ‘미국 11월 중간선거(30%)’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불확실성(20%)’ 등이 제시됐다. AI 산업의 수익성이 둔화되면 국내 증시 대장주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쳐 상승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EO 10명 모두(100%) ‘AI·반도체주’를 올해 주식시장의 주도주(2개 이상 복수 응답)로 지목했다. AI 거품 논란이 남아 있지만 관련 업종 전반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강세장은 지속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AI·반도체주를 꼽은 한 증권사 CEO는 “미국 AI주들에 대한 옥석 가리기 움직임은 올해도 이어지겠지만 이 같은 움직임만으로 AI 시장 전반의 활황이 끝났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 “1월 중순 이후 예정된 메타 등 주요 업체의 지난해 4분기 실적과 향후 투자 계획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조선·방산주(40%)와 미국 빅테크주(30%), 바이오·로봇·우주 등 신사업주(30%), 고배당·지주사 같은 정책 수혜주(20%)도 뒤를 이었다.
지난해 증시 활황장으로 대폭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대형 증권사 CEO들은 올해도 경영 여건이 ‘대체로 양호(70%)’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 CEO는 “올해도 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증권사 실적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면 나머지 30%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와 치열해진 브로커리지(주식 위탁 매매) 경쟁 등을 이유로 올해 경영 여건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CEO들은 올해 최우선 추진 과제(2개 복수 응답)로 ‘내부통제·금융소비자 보호’를 가장 많이(70%) 언급했다. 국내 증시 호조로 증권사 간 ‘고객 모시기’ 경쟁이 가열된 상황에서 내부통제 실패는 금융 사고로 이어져 회사 전체의 신뢰가 훼손되고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답변을 한 증권사 CEO는 “신뢰가 곧 자산인 금융 업계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또 ‘디지털·AI 사업(40%)’ ‘리스크 관리(10%)’ ‘신사업 확대(10%)’를 추진하겠다는 답변도 나왔다. 디지털·AI 사업 강화를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힌 한 증권사 CEO는 “올해는 디지털·AI 기술의 성숙도가 한층 높아지고 관련 규제와 법제화도 본격적으로 정비되면서 금융 산업 전반에서 기술 기반 비즈니스의 확산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증권사의 영업, 자산관리, 리스크 관리 등 핵심 영역에서 AI를 통한 실질적 성과 창출 사례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