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현미경이 기초과학 연구에 이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의 핵심 장비로 떠오르면서 국내 장비 기업들이 국산화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특히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독점해온 최첨단 제품군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반도체 공정이 초미세화되고 배터리 내부 소재의 물리적·화학적 분석이 중요해지면서 전자현미경 수요는 지속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장비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초로 투과전자현미경(TEM) 상용화에 나선 벤처기업 엠크래프츠는 올해 2분기 내 시제품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앞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으로부터 TEM 시스템에 대한 기술 이전을 받아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전자현미경은 가시광선 대신 전자빔을 사용해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의 미세 구조를 관찰하는 장비로 크게 TEM과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나뉜다. TEM는 전자빔을 시료에 투과시켜 세포 내부나 나노 입자의 결정 구조까지 볼 수 있어 SEM보다 한 단계 진일보한 기술로 꼽힌다. SEM은 전자빔을 시료에 쏘아 표면의 3차원 입체 구조를 보여주는 장비다. 현재 전 세계 TEM 시장은 일본 히타치나 일본전자(JEOL), 미국 써모피셔가 독점한 상태다.
국산화가 진전된 SEM 분야에서는 코셈(360350)·쎄크(081180) 등 장비 기업들의 성과가 눈에 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SEM을 자체 개발한 코셈은 전체 매출 가운데 약 60%가 해외에서 나오며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가 40곳을 넘는다. 쎄크는 산업용 엑스레이 검사 장비와 함께 탁상형 SEM을 제조해 해외 시장에 공급한다. 고가 장비인 SEM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규모 저가형 모델로 차별화한 것이 특징이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네스터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현미경 시장 규모는 지난해 54억 달러(약 7조8000억 원)에서 2035년 118억 달러까지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업에서 가장 미세화된 공정이 도입된 반도체 시장에선 원자현미경도 주요 장비로 자리잡고 있다. 원자 간 인력(끌어당기는 힘)을 감지해 전자현미경보다 더욱 입체적으로 시료 표면을 관찰할 수 있어서다. 국내 장비 기업 파크시스템스(140860)는 비접촉식 원자현미경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글로벌 원자현미경 시장에서 약 2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이 회사의 연 매출은 지난해 약 2060억 원에서 올해 약 2450억 원으로 약 1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 나노 광학 분야 석학인 제원호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가 세운 원자 현미경 스타트업 멀티스케일인스트루먼트(MSI)는 최근 딥테크 팁스에 선정되기도 했다.
장비 업계 관계자는 “전자현미경은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장비”라며 “외산 장비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국내 제조 기업들의 공급망 안정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