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무리된 이재명 대통령의 생중계 업무보고는 일종의 ‘극장(劇場) 정치’로 보였다. 이 대통령 스스로 “넷플릭스보다 더 재밌다는 이야기도 있더라”라고 했듯이 업무보고가 국민들에게 서사를 통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직접 제공해줬다는 점에서다.
청와대는 생중계 업무보고가 재미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국정 이해도까지 높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에는 기대와 다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업무보고를 소재로 만들어지는 유튜브나 릴스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짧으면 1~2분, 길어야 5~10분 정도로 축약되는 이 영상들에는 대부분 이 대통령에게 흠씬 혼나는 관료 또는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장면들을 본 국민들 상당수가 ‘대통령 한번 잘 뽑았다’는 정치적 효능감 또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도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본다면 업무보고는 그 자체로 괜찮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쏟아지는 대통령의 발언과 그 수위다. 과거 명작으로 평가받았던 영화들이 2탄·3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지리멸렬해지는 것은 대부분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다가 본질적인 감동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업무보고를 지켜본 전직 고위 관료는 “대본 없이 진행되는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셀 때가 많아 놀랐다”며 “지방선거를 앞둔 다음번에는 점점 더 자극적인 발언이 나올 텐데 뒷수습이 어려워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령 지난해 12월 19일 생중계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가 이런 경우다. 이 대통령은 “금융지주 내부에 부패한 이너서클이 있다”며 “요즘 투서가 엄청나게 들어온다”고 지배구조 문제를 정면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온갖 정보가 모여드는 저수지가 청와대인 만큼 대통령이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정보를 ‘투서’라고 표현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청와대 내부에서 정보 기능을 담당하는 곳은 국가안보실·민정수석비서관실·국정상황실 등이고 이곳에서 투서(첩보)를 검증해 정보로 가공하는데 마치 이곳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는 첩보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대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은 “투서만 관리하는 별도의 직통 라인이 있다는 의미인지, 청와대 내부에서 정보를 분류·분석하기 전 단계에서 대통령이 첩보를 미리 본다는 것인지 해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만에 하나라도 대통령이 투서를 근거로 민간기업의 고위 임직원들을 부패한 집단이라고 묘사한 것이라면 그 발언이 대한민국 금융 산업의 신뢰에 미친 피해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의 말 때문에 위기에 처한 기업은 또 있다. “우리나라는 생리대가 유독 비싸다”며 대통령이 직접 조사를 요청한 생리대 업계가 불운의 주인공이다. 국내 생리대 업계는 유한킴벌리와 LG유니참·깨끗한나라 등이 3대 업체로 꼽히는데 대통령 지시가 떨어진 지 불과 닷새 뒤 이곳 3사에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물론 생리대 시장에 담합이 있고 이에 따른 폭리가 있다면 조사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정위는 취약 계층 여학생들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썼다는 일명 ‘깔창 생리대’ 논란이 있던 2016년에도 조사에 나섰다가 이렇다 할 혐의점을 잡아내지 못했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고 보고하기 어려운 딱한 상황이다. 지금도 담합이 없다면 대통령이 뭔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되고 중대한 법 위반이 있다면 공정위가 무능하다는 것이 되는 외통수에 몰린 탓이다. 대통령이 생리대 가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욱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사안에 접근했어야 실체적 해결 방안이 나오는 데 더 큰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현직 공정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기업에 다녀본 사람들은 하다못해 중소기업 CEO의 지시라도 거기에는 천금과 같은 무게가 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물며 대통령의 발언은 그 자체가 국정의 방향을 보여주는 메시지가 된다. 혹여 대통령 메시지가 너무 많아져 흐릿해지거나 가벼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