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법원 주도 기업회생의 취약점은 기업들이 살 수 있는 ‘골든타임’을 지나서야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홈플러스 회생신청이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가졌던 이유는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법원의 회생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10개월간 통매각은 실패했고 본체인 홈플러스는 117개 점포 중 담보와 폐점을 제외하면 10여 개만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홈플러스 회생이 사실상 실패한 이유는 변제율 100%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게 기업회생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산가치를 시장의 예상보다 높은 3조 7000억 원으로 산정했고, 이 가격에 홈플러스를 인수할 후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경쟁 대형마트에 비해 높은 정규직 비율과 노조의 반대도 결과적으로는 매각에 걸림돌이 됐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채권단은 홈플러스가 제출한 구조혁신형(청산형) 회생계획안을 검토 중이다. 법원에 따르면 전체 회생채권 규모는 약 2조 5000억 원에 달하며 임금·세금, 일부 상거래채권, DIP대출이 포함된 공익채권은 회생을 신청한 지 7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6000억 원 이상으로 늘었다. 회생절차에 따라 유입되는 현금은 공익채권에 먼저 돌아가고 이후 남은 돈이 회생채권에 간다. 회생채권자 중에는 회생 기간에 발생한 협력 업체와 입점 업체의 상거래채권,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된 매출채권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홈플러스와 임대료 협상에 실패하고 임대료를 받지 못한 부동산펀드, 기업어음 투자자와 은행 같은 일반 금융기관 등이 있다.
대표채권자이자 담보권이 있는 메리츠금융그룹과 나머지 채권단 간에는 입장이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금융그룹은 회생채권자에 해당하지만 62개의 점포를 약 2조 4000억 원의 가치로 보고 1조 2000억 원을 빌려줬고 이미 2000억 원 가까이 상환받아 1조 원가량이 남아 있다. 법적으로는 언제든지 담보를 팔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가능한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회생 전부터 인수 협상이 오갔던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분할 매각을 추진하지만 실질적으로 유입되는 현금은 홈플러스를 되살리기에 역부족이다. 회생 전 매각 과정에서 익스프레스 기업가치는 8000억 원대 이상으로 거론됐으나 현재는 이보다 낮은 매각가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유통그룹인 이온그룹이 초기에 관심을 보였지만 직접투자보다는 재무적투자자(FI)와 손잡고 경영에만 참여하겠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익스프레스가 현재 예상되는 6000억~7000억 원에 팔린다고 해도 이는 기업가치일 뿐 실제 들어오는 현금은 더 적을 수 있다.
회생계획안에 ‘청산형’으로 방향을 잡은 것도 익스프레스를 팔고 41개 점포를 정리하면 남는 대형마트 점포가 얼마 안 돼 새 주인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공익채권과 회생채권을 합하면 약 3조 1000억 원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납품 중단과 현금 흐름 악화라는 이중고 역시 심화되고 있다. 한 기업회생 전문가는 “기업회생은 말 그대로 기업을 되살린다는 말인데 117개 점포 중 (담보와 폐점을 제외하고) 10여 개만 남기는 게 회생이라고 볼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5826억 원을 투자한 국민연금 역시 배당으로 회수한 3131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청산될 경우 더 이상 받기 힘들게 된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3월 회생을 신청했을 당시 채권단에 진 빚을 모두 갚기 위해 ‘변제율 100%’를 강조했다. 기업회생이 성공하면 보통주 투자자까지 1조 원이 돌아가기 때문에 국민연금도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업회생 과정에서 보통주 투자자는 물론 채권자가 돌려받는 비율인 변제율도 한 자릿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업계가 예상했던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약 2조 원대였지만 청산가치는 3조 7000억 원, 계속기업가치는 2조 5000억 원으로 산정됐다. 기업회생 전문가들은 청산가치는 자산을 경매로 처분했을 때 낙찰률과 주변 시세, 기존 거래 등을 따지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높게 책정됐다고 분석했다. 홈플러스의 자산가치는 약 5조 원인데 최근 상가의 평균 낙찰률은 약 20% 정도여서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기존 거래 등을 반영해도 2조 원을 넘기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물론 법정관리 과정에서 공개매각 ‘4수’ 끝에 살아남은 성동조선해양(현 HSG성동조선)과 같은 사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남아 있다. 특히 점포 폐점 등으로 일자리가 대거 상실하는 것을 우려하는 정치권과 노조의 반발이 커질 경우 회생계획안 인가 자체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