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부과한 상호관세의 적법성을 따지는 연방대법원 판단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8일(현지 시간) 미국 베팅 시장에서 트럼프 정부의 패소 확률이 77%로 치솟았지만 무역법 122조 등 대체 수단이 발동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우리나라가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한 주요 배경인 상호관세가 무효로 결론이 날 경우 한미 무역협정에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대법원은 9일 오전 10시(미 동부 시각) 중대 사건에 대한 선고를 내릴 예정이며 주요 외신들은 IEEPA에 근거한 상호·펜타닐 관세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소송은 미국 중소기업들이 관세를 징수할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있다며 제기한 것으로 5월 1심과 8월 2심에서 모두 원고가 승소했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대법원이 원고가 일부 혹은 전면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JP모건·UBS 등은 “IEEPA가 대통령에 의한 관세 부과를 명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제재 중심 법률이고 관세는 국가 경제에 중대한 사안으로 대통령이 권한을 가지려면 의회의 명확한 위임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예상했다. 일부 승소의 경우 국가비상사태와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는 관세만 인정하는 것으로 가령 펜타닐 문제와 관련된 관세만 인정하는 시나리오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행정부가 이건 할 수 있고 저건 할 수 없다’는 식의 혼합된 형태의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대체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베선트 장관은 “전체 세수 측면에서 관세 수입을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 자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사전 조사 없이 대통령이 즉각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법 122조 발동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혹은 심각한 달러 가치 하락 시 대통령에게 최대 150일간 최고 15%의 관세 등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이다. 다만 국가 간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어 IEEPA와 달리 특정 국가나 품목에 관세를 차등 적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 150일 이상 부과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후속 입법도 필요하다. 이에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에 부과한 품목관세의 근거인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사전 조사가 필요해 발동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발동되면 지속적으로 효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품목을 타기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외에 미국과의 상거래에서 차별을 한 나라의 수입품에 대통령이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관세법 338조도 주요 대안이다. 다만 미 역대 정부를 통틀어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어 향후 소송이 제기되는 등 법적 리스크가 있는 것은 부담이다. 아울러 특정 국가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근거로 국가, 품목별 보복 관세를 매길 수 있는 무역법 301조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대법원이 원고 일부 혹은 전면 승소 판결을 내린다면 환급 문제를 놓고도 대혼란이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자동 환급보다는 기업의 개별 청구 방식이 유력하며 건별로 입증이 필요해 절차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BNP파리바는 전망했다. 미 정부가 IEEPA에 근거해 거둬들인 관세는 30만 개 이상의 기업으로부터 1500억 달러(약 218조 5000억 원)에 달한다. 현재 1000개 이상의 기업이 관세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환급을 위해 미 재무부의 국채 발행이 증가하며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채권시장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한편 이날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트럼프 행정부가 패소한다면 한미 무역 합의에도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무역 합의를 파기하라는 국내 압력에 직면할 수 있지만 조선 및 핵추진잠수함 등에 대한 한미 합의가 흔들릴 수 있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비관세 장벽 철폐 등 한국으로부터 받아낸 약속을 지켜야 하는 부담이 있다. 차 석좌는 “올해 한국의 지방선거, 미국의 중간선거 등 한미 양국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무역협정의 핵심 요소를 지켜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