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윤석열 출석 확인하겠습니다.”
재판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거쳐갔던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 30년 전인 1996년 ‘12·12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 법정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 역시 이곳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도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같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은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갈색 서류봉투를 손에 든 채 법정에 들어섰고 피고인석에 앉기 전 재판부를 향해 인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법정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군경 수뇌부 주요 피고인 7명도 모두 출석했다.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 측에서는 박억수 특검보를 중심으로 검사 8명이 자리를 채웠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재판 내내 날 선 신경전을 벌여온 특검과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결심공판 당일에도 자료 하나하나를 두고 또다시 공방을 벌였다. 김 전 장관 측 이하상 변호사가 서증조사 시작 전 자료 배포 준비가 미흡하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특검 측은 “자료 확인이 필요하므로 준비가 된 피고인부터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발언 순서 변경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은 “구두변론으로 진행하겠다”며 맞섰고, 특검팀은 “오늘 재판을 오전 9시 20분에 시작한 이유를 고려해 달라”며 사실상 지연을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 공방이 길어지자 지귀연 부장판사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징징대지 않는 데 있다”며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양해를 구하고, 양해가 어렵다면 준비된 피고인부터 진행해야 한다”고 질책했다. 김 전 장관 측이 “우리가 징징댄 것이냐”며 언성을 높이는 사이 뒤늦게 자료 준비가 마무리되며 소모적인 공방은 일단락됐다.
김 전 장관 측의 서증조사가 이어지는 동안 윤 전 대통령은 배포된 자료를 훑어보거나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간간이 옆자리에 배석한 윤갑근 변호사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방청석을 둘러보는 모습도 포착됐다. 결심공판 특유의 긴장감보다는 장시간 대기를 감내하는 분위기가 법정을 감쌌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은 이후에도 사실상 법정판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첫 서증조사에 나선 김 전 장관 측 이하상 변호사는 전날 특검이 제출한 변경 공소장부터 세세하게 짚으며 시간을 끌었다. 그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검사가 자의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이 사건은 정치재판이자 불법 공소”라며 “재판부가 공소기각 판결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전 중 서증조사를 마무리하려던 재판부의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고 충분한 증거 설명조차 듣지 못한 채 오전 재판은 종료됐다.
김 전 장관 측은 300~400쪽 분량의 방대한 서류를 준비해 오후에도 증거조사를 이어갔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6~8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재판부에 밝혔다. 위현석 변호사는 “검찰 측이 서증조사에 7시간 반을 사용했다”며 “모든 피고인에게 동일하게 7시간 반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특검 측은 “휴정 시간과 반복된 이의제기를 제외하면 실제 서증조사는 5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며 반박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언제 이의신청을 2시간이나 했느냐”며 “특검 측이 시간을 재기라도 했느냐”고 맞섰다. 핵심 쟁점보다 시간 배분을 둘러싼 논쟁이 재판을 잠식하는 모습이었다. 특검 측의 피고인별 구형 의견은 피고인 측 서증조사가 모두 끝난 뒤에야 제시될 예정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판의 진행과 종료 시점은 재판장의 소송지휘권에 속하며 재판 시간에 대한 별도의 제한은 없다. 다만 재판부는 이날 “최대한 종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길어지는 변론에 대한 부담을 내비쳤다.
이날 변론으로 재판이 종결될 경우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6일 구속기소된 후 348일 만에 1심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 재판에는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조 전 청장 사건을 합쳐 중복을 제외하고 약 160명의 증인이 출석했다. 특검 측은 국회에 대한 군 투입과 정치인 체포조 운영 등을 근거로 형법상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문란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고 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측은 ‘경고성 계엄’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한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내란죄 수사권 논란을 제기하며 공소기각이나 무죄 선고가 내려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