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릭스미스 등 임상 좌초 악재에도
VC 올 바이오투자액 1조 넘을 듯
수익낸 VC, IPO 후 출구전략 몰두
‘한 방’ 꿈꾸는 개미는 뒤늦게 참전
“신약 성공가능성 낮아…투자 주의”
#“신라젠 지금 들어가야 되나요. 너무 무섭게 오르네요. 우리의 갓(GOD)라젠, 아멘. 고맙다 갓갓. 신라젠 때문에 사는 게 즐겁네요. 우리 신라젠 가즈아. 소리질러~”
지난 2017년 하반기 주식투자 카페 게시판은 바이오벤처 신라젠을 찬양하는 글로 도배가 됐다. 이 무렵 신라젠이 자사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펙사벡과 글로벌 제약사 항암제와의 병용요법으로 글로벌 임상에 돌입했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폭등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라젠은 2016년 코스닥에 상장한 지 불과 1년여 만인 2017년 11월 주가가 공모가의 열 배인 15만원까지 치솟았고 시가총액은 무려 10조원에 달했다. 인터넷 게시판 곳곳에서 신라젠에 투자해 수억원을 벌었다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올해 초 공개된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 주식 투자 목록에도 신라젠은 빠지지 않았다.
이처럼 신라젠은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투자의 아이콘이었고 투자자들은 축포를 터뜨렸지만 분명한 것은 주가를 끌어올렸던 펙사백은 아직 시장에 나올 수 없는 개발 중인 의약품이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바이오산업의 독특한 특성, 즉 제품 개발이 완료돼 시장 반응을 확인하기 전에도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점이 벤처캐피털(VC) 같은 ‘큰손’들의 거침없는 투자를 끌어낼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3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VC의 바이오헬스 분야 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8월까지 투자액이 8,441억원으로 지난해 8,417억원을 뛰어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8월 한 달간 투자액이 1,514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신라젠의 임상 3상 실패 소식으로 바이오업종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찬바람이 어느 때보다 강했던 시기다. 이어 최근 헬릭스미스의 당뇨병성 신경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DPN)’ 역시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바이오산업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업체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투자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이 도처에서 폭탄이 터지는 바이오산업에 아낌없는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최근 만난 한 의료기기 스타트업의 김모 대표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투자 유치를 위해 만났던 수많은 VC들은 신약 후보물질의 상용화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임상 2상이나 3상 때 주가가 수십배로 뛰어 상용화 이전에도 청산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한편에서는 일부 바이오 주식의 성공신화를 지켜본 개미 투자자들이 한 방을 노리며 ‘부나방’처럼 투자 대열에 뛰어드는 것도 거품 형성에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신약 후보물질을 가진 바이오벤처에 투자한 후 기업공개(IPO)를 거쳐 적당한 시점에 출구전략에 몰두하는 VC와 ‘한 방’에 취한 개미들의 지나친 관심 탓에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대적인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임상 효과를 과장하거나 내부자 거래 문제로 도마에 오르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바이오 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개발 중인 신약이 해당 되는 전체 시장의 규모를 제품 매출로 과장해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부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회사 자체에서 강력하게 마케팅을 하거나 홍보를 하면 그대로 시장 가치가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제약업체 관계자도 “미국에서 자체 신약을 판매하는 일본 업체들의 시가총액도 5조~10조원인데 아직 제대로 된 신약을 개발하지 못한 국내 바이오업체의 시가총액이 수조원에 달하는 것은 가치가 매우 부풀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과장된 홍보와 부풀려진 주가의 결말은 심각하다. 신라젠의 주가는 1만원대 밑으로 추락해 시가총액은 6,76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 봄 31만8,000원(3월14일)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헬릭스미스의 주가는 지난 2일 기준 7만1,400원으로 4분의1 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도 4조8,000억원에서 1조5,223억원으로 줄었다. 한 벤처투자사 임원은 “VC는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서 벤처의 IPO나 인수합병(M&A) 이후 청산을 하는 게 기본적인 투자 과정”이라며 “VC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프라이빗뱅커(PB), 신기술금융사들까지 바이오벤처로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임상 실패가 이어지고 있고 한국거래소도 점점 바이오를 보는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갈수록 청산 시점을 잡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오신약의 성공 가능성이 다른 어떤 제품보다 낮다는 점을 늘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을 신청한 신약 후보물질 중에서 상용화에 성공해 시장에 나온 신약은 9.6%, 특히 항암제는 5.1%에 불과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 스타트업이나 벤처에 대한 투자는 계속 늘어나야 한다”면서도 “업체들도 정확한 임상계획 수립뿐 아니라 임상시험수탁기관(CRO) 관리, 임상 병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종합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고 투자자들도 글로벌 임상 돌입이 무조건 신약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