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1999년 서울

禹源河 증권부차장1979년 서울의 화두는 「경제발전에 상응한 정치발전」이었다. 18년간 집권한 박정희 전대통령이 시해된 직후였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1999년 서울. 신정때 연희동과 상도동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고 한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연희동 집에는 5공인물 등 1천여명이 몰려와 인사를 했고 노태우 전대통령 집에도 많은 전현직 관료·정치인들이 찾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에도 이른 아침부터 하루종일 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全전대통령은 『건강의 근본은 마음에 있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게 최고이니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죽이라』고 세배객들에게 당부했다. 경제문제와 대북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혔다고 한다. 盧전대통령은 주로 덕담을 나눴으나 『88올림픽을 치를때 가졌던 열정이 지금은 없는 것 같다』며 현실관의 일단을 내비쳤다. 金전대통령은 보다 적극적이었다. 현정국과 관련 『나쁜 놈들 같으니』라는 표현도 썼다. 그들은 누구인가. 全·盧전대통령은 80년 서울의 봄을 겨울로 되돌린 장본인이다. 그들은 집권후 기업인을 상대로 비자금을 받음으로써 시장경제질서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때문에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만 우리기업들의 고질적 병폐인 부채경영, 문어발식 경영의 토양을 제공한 셈이다. 盧전대통령은 사회간접자본투자를 게을리하면서 200만호 주택건설을 추진, 우리경제의 고비용·저효율구조 형성에 기여했다. 金전대통령은 특유의 승리 이데올로기에 빠져 경제보다 정치에 우선했다. 두 전직대통령을 포함해 사정을 하도 하다보니 종국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사정 하게됐다. 상도동과 연희동이 북적거린 그 시간, IMF행에 일익을 담당한 한보사태와 연루되어 감옥에 갔다온 권노갑 전 국민회의부총재의 평창동 자택에도 1천여명의 정치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거물들도 단칼에 베어버리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시 붙어버리는 현상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검찰권은 지금 국회안기부사무실 공방과 관련, 야당수뇌를 다시 노리고 있다. 이제는 아예 물을 베는 심정일지도 모른다. 법치·정치와 인치·검치가 뒤죽박죽인 1999년 서울의 화두는 「경제와 정치의 병행발전」인가. 20년전보다 나은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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