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주일 새 금을 사간 손님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장맛비가 줄기차게 내리던 15일 오전11시 귀금속 상가들이 몰려 있는 서울 종로3가 귀금속 도매골목. Y귀금속의 직원인 황모(32)씨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금값 때문에 국내 대표 귀금속 시장인 '종로시장'에서 '금 거래'가 실종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기자가 T귀금속 상가에 입점한 7개의 판매점을 돌아보니 단 한 곳에 손님이 한 명 있었다. 대부분 직원들은 매대 위에 신문을 펼쳐 놓고 읽고 있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아예 물건을 보러 오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국내 금 소매가격은 지난 2일 3.75g(1돈)에 20만9,000원까지 떨어졌으나 5일부터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고 14일에는 21만7,200원을 기록했다. 국내 금값으로는 사상 최고치다. 소비자들이 1돈짜리 반지 등 금세공품을 사려면 세공비와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25만원 수준이다. 귀금속 도매업체 T사의 김모(45) 사장은 "금값 올라서 돈 좀 벌었겠다고 말하는 것은 현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금값 오르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다"고 말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K사장뿐 아니라 상가 내 입점해 있는 판매점 사장들의 표정이 회색빛 하늘만큼이나 어두워 보였다. 귀금속 상인들은 금값이 안정되기를 바랄 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5년 동안 장사를 해왔다는 L사의 이모(41) 사장은 "요즘 거래가 거의 없다"면서 "젊은 친구들이 커플링 상담을 문의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그마저도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토로했다. 수십년간 장사를 해온 K사의 김모(63) 사장은 "요즘 3.75g 돌 반지 하나 팔아 1,000~1,500원 정도 번다"면서 "상가 월세 등 매장 운영 비용 내기도 빠듯하다"고 한숨을 내셨다. 그는 이어 "인건비 챙겨주기도 힘들어 직원 없이 혼자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물 간소화 추세도 더 강화돼 상인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P귀금속의 직원 고모(30대)씨는 "평일에는 예물 상담의 거의 없고 주말에는 10쌍 정도가 매장을 찾는다"며 "이 중에서 1쌍 정도가 계약을 하고 가는데 그나마도 반지 1세트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도매상점의 금 매입 거래도 거의 안되고 있다. Y귀금속 직원 강모씨는 "요즘에는 금을 팔겠다고 매장을 찾는 사람도 드물다"면서 "2~3년 전에 금값이 오를 때 보유하던 금을 팔고 나서 (수중에) 남은 금이 없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금값이 오르면 팔고 내리면 되사는 등 시장에서 금 거래가 순환이 돼야 하는데 최근 몇 년 새 금값이 오르기만 해서 순환고리가 끊겼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경영난으로 폐업하는 귀금속 점포도 나오고 있다. 김씨는 "도매 상가를 돌아다니면서 불이 꺼져 있는 판매점은 폐업한 곳으로 보면 된다"면서 "권리금이 1억원이 넘던 업소도 그냥 문을 닫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역시 치솟는 금값에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P매장을 찾은 최모(74)씨는 "금값이 너무 비싸서 새로 구입은 못하고 기존 반지의 디자인을 바꾼 것을 찾으러 왔다"면서 "요즘 금값 보면 금 상품을 구입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