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김석동이 살길

지난 1998년 9월. 명동성당에는 울음과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5개 은행 퇴출로 눈물을 쏟아냈던 뱅커들은 석 달 만에 마주한 감원의 소용돌이에 가슴을 쳤다. 성당 내리막길의 농성장을 찾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뱅커의 처자식들이 토해내는 아우성을 뒤로 하고 협상장인 은행회관으로 걸어가던 그는 성난 은행원으로부터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수모를 맛보았다. 하지만 끝내 구조조정을 매듭지었다. 죽일 곳은 가차없이 죽여야 김석동 금융위원장. 그는 이헌재 이상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금융 관료의 계보를 이어왔다. 참여정부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인 채 짧지 않은 야인생활을 겪었지만 화려하게 돌아왔다. "시장의 질서를 잡겠다"는 그의 일성은 '치(治)의 마술'로 금방이라도 시장을 취하게 만들 듯했다. 천하의 김석동이 무너지고 있다. 그는 지금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연민의 존재가 됐다. 금융회사 말단 대리까지도 이렇게 읊조린다. "정말 힘들겠어요.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잖아요. 오른팔(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장)까지 잃었으니. 정권에 지분도 없고…." 물론 억울하다. 그를 구렁텅이로 몰고 온 저축은행 문제만도 전임자들이 저지른 일을 설거지하다 꼬였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어떤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의 그늘 아래에서 그가 펼칠 공간은 없었다. 국회의원들 앞에서 "(산은의 인수를) 안 하겠다"고 맹세하는 일이 전부였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도 따지고 보면 별 도리가 없었다. 힘드나마 결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변양호(전 재경부 금정국장) 선배 꼴 나고 싶지 않다"는 후배들의 팔을 비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김석동은 이렇게 죽어야만 하나. 그렇지 않다. 김석동이 누구인가.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사장들이 몇이던가. 위세가 대단하다는 지주사 회장들도 한때 그의 면전에서 머리조차 들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김석동이 살길은 여기에 있다. 한껏 위세를 부리는 모습을 되찾는 것이 바로 살길이다. 그것이 김석동다운 것이다. 다행히 기회는 오고 있다. 저축은행이 수단이다. 때도 멀지 않았다. 추가 영업정지야 오는 9월 하순이겠지만 관료의 힘은 과정에서 빛을 낸다. 그것은 자신이 즐겨 쓰듯 '배를 째라면 째겠다'는 각오 속에서 가능하다. 엄청난 시련이 기다릴 것이다. 부산저축은행을 능가하는 정치적 역풍이 불 것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목줄기를 뜯을 것이다. 저축은행의 문을 닫기도 전에 먼저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이헌재가 뒤통수를 맞으면서 해냈듯 김석동도 죽일 곳은 가차 없이 죽여야 한다. 죽이지 못한다면 대주주들과 멱살잡이라도 해서 살려야 한다. 기본에 '따뜻한 금융' 덧칠을 김석동이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길, 그것은 바로 금융의 기본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다. 오늘의 금융산업은 퇴출 은행원들이 만든 '눈물의 비디오' 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흔들린다. 리딩뱅크라던 KB와 신한지주는 연이어 찢겨진 지배구조의 몰골을 드러냈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금융산업의 참담함을 보여줬다. 정치인들은 예금전액보장이라는 후진적 포퓰리즘의 구호를 뿌려댄다. 이들의 목소리를 죽여야 한다. 기본을 담은 블루프린트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기본에 덧칠할 것은 '따뜻한 금융'을 만드는 일이다. 블루프린트보다 훨씬 소중할 수 있다. 내 돈 맡기고 대출 받으면서도 20% 넘는 이자를 약탈당하는 사람들, 이들의 상처를 달래야 한다. 이들의 아픔을 볼모로 1조원을 버는 은행이 태어나면 무엇하겠는가. 금융관료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할 길은 이제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시간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